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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63> 감사하며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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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63> 감사하며 사는 삶

입력
2003.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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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이 기세를 회복해 인민군을 한창 밀어붙이던 9월20일부터 인민군과 빨치산의 모습이 돌변했다. 이전만 해도 인민군들은 비교적 신사적으로 주민들을 대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포악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의 퇴로를 막은 국군과 유엔군의 파상적인 공세 앞에 인민군의 위세는 예전과 달리 크게 위축됐다. 9·28 수복이 가까워지자 인민군들은 6·25 이전부터 산에 숨어있던 빨치산들과 합류하기 위해 입산 하기 시작했다. 특히 9월28일까지 후퇴 명령을 받지 못했던 각 지역 인민위원회 등 비정규군의 입산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입산하면서 유치장에 가둬 놓은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내 처형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인민군도 마지막 발악으로 사람들을 마구 죽이곤 했다. 인민군 점령 지역 어디서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행해졌다.

이 때문에 9·28 수복이 된 뒤 인민군의 폐해가 극심했던 지역에서는 거센 보복이 가해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순수 부역자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역을 했던 사람들도 린치를 당했다. 심지어 부역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보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이런 일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났다. 비상 시국인데다 통신도 원활하지 못하고 명령체계마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상부 지시와는 상관없이 현장 지휘자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삼례를 점령하고 있었던 30대의 젊은 인민위원장은 비교적 온건한 편이었다. 국군이 진군하기 바로 전날 저녁, 인민위원장은 둘째 형님이 운영하던 병원을 찾아와 산에서 쓸 비상약품 등을 달라고 요구했다. 산 생활을 하려면 식량과 함께 약품이 꼭 필요했다. 그는 요구를 들어주면 더 이상 삼례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다. 더 생각하고 말고 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둘째 형님은 있는 약품을 대부분 건네줬다. 그들은 약속한 대로 더 이상 패악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

9월27일 군산 앞바다에서 쏘아대는 아군의 함포사격 소리가 들려왔다. 28일에는 전주에 국군이 들어왔다. 인민군이 물러간 뒤 삼례에는 치안대와 학도의용대 등이 조직됐다. 전주를 점령한 국군은 패주하는 인민군 추격에 나섰고, 경찰력이 아직 삼례에 미치지 못하는 시기가 한달 가량 계속됐다. 하지만 언제 빨치산들이 내려올지 몰랐고, 이곳 저곳에 패잔병들이 숨어있던 상황에서 무작정 경찰이 오기만 기다릴 수 없어 주민들은 자체 치안대를 조직했다. 학도의용대는 치안대 업무를 옆에서 도와주던 조직이었다.

나는 유치장에서 나를 풀어주는데 큰 역할을 한 친구를 찾았다. 그 친구는 부역 혐의가 명백했지만 내가 보증을 서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유치장에서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유치장에서 풀어준 그 선배는 끝내 찾지 못했다. 한동안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 선배의 형님이 나를 찾아왔다. 그 선배가 집에 숨어있다는 것이었다. 아찔한 일이었다. 만일 다른 치안대원이나 학도의용대에 먼저 발각됐다면 목숨이 온전치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즉결처분이 무서웠던 시절이었다. 그 선배 역시 내가 보증을 서서 살 수 있었다.

6·25를 거치며 두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경험은 이후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나미를 세우고 꾸려오는 동안 강인한 의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줬고, 언제나 살아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겸양의 덕도 갖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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