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 물고기를 보고 사람들은 '답답하겠다'고 하지만 금붕어들은 그런 걸 모른다고 한다. 기억력이 나빠 "아유, 그 물풀 탐스럽기도 하다"며 지느러미를 살랑살랑 흔들고 지나갔다가 반대편 벽에 부딪혀 돌아오면서는 "누가 이런 걸 여기 심어 놓았나?"고 한단다.나의 기억력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자주 보지 않으면 단짝 친구도 이름만으로 얼굴을 떠올릴 수 없고, 열 살 이전 유행하던 작은 땡땡이 무늬의 '깔깔이' 치마감은 그 촉감까지 손에 잡히는 데 그걸 입은 어머니 모습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니 모습은 지난 설에 빈대떡과 약밥을 양손에 든 채 발로 현관문을 차던 게 전부다. 25년이 넘은 연예계 생활에서도 처음 레코드판이 나온 날 밤을 제외하곤 기억 나는 게 거의 없다. 수많은 공연과 녹음, 방송, 인터뷰, 친구와 술집들은 모두 어둠 속에 있다. 나는 아마 추억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물 둘 나이에 맞은 여름은 예외다. 유난히 취업이 힘들었던 해. 흑석2동 침수지구. 하늘색 페인트로 덧칠이 된 초록색 대문의 아래쪽 반은 칠이 다 일어나 있었다. 그 대문이 유독 기억에 선명한 것은 안에서 열 때는 언제나 희망이었지만 들어와 빗장을 걸 때는 절망이었기 때문이다. 술 냄새가 나는 숨을 푹푹 몰아 쉬면서 잡은 문고리. 그 문고리를 잡고 늘 되뇐 소리는 "나는 얼마나 무력한 인간인가"였다. 대문을 열면 빨래 줄이 서너 가닥 처마 밑으로 뻗어 있고 대여섯 평의 마당을 돌아서면 골방이 있었다. 책상 하나와 낡은 목침대 하나 있는 세 평 남짓한 내 방.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은 침대에 힘없이 몸을 뉘었다.
대낮에 마당 화장실 문의 유리창에서 반사된 태양 빛이 조롱당하는 희망처럼 내 어두운 방 벽에 거울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의 떨림으로 바깥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그 놀이에 빠져 있었다. 나는 작은 손거울을 들고 마당에 나가 내 방에 빛을 비춰 보았다. 내가 나에게 보낸 희망의 빛이었다. 그 작은 거울은 해시계가 돼 주었다. 나는 매일 벽에다 해시계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피면 해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도 있었다. 암실 같은 내 방 전체가 시계로 변하고 있었다.
그 초라한 청춘의 시계만큼은 선명하게 내 비밀의 방에 각인 돼 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나는 소리없이 흐르던 시간을 바라보던 그 시절을 떠 올린다.
/김 창 완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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