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국 BMS 제약 이희열(李熙烈 ·38) 사장은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상식을 깨뜨리는 젊은 최고경영자(CEO) 다운 참신한 발상이다. "일할 때는 편한 옷이 최고"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터뷰 때도 옷차림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임에 나갈 때 가끔 운전기사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말한다.요즘 제약업계는 400여 개가 넘는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1997년 이 땅에 상륙한 다국적 제약회사 브리스톨 마이어스퀴브(BMS)가 99년 이후 매년 50% 넘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비결이 뭘까.
이 사장은 연말이면 한 달 내내 고생을 한다. 직원 202명에게 보낼 연하장을 일일이 손으로 쓰기 때문이다.
내용도 각각 다르다. 인사기록 카드를 참고하고 기억을 더듬어 사연을 담는다. 자필 연하장을 보낸 지 벌써 5년째다. "인쇄된 연하장은 성의가 없어 보여 직접 써서 보낸다. 처음엔 반응이 없더니, 지난해에는 답장도 절반 넘게 왔다."
직원을 배려하는 이 사장의 마음은 남다르다. 하루 7시간30분씩만 일하도록 하고 있고, 출근도 오전 8시30분에서 10시 사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영업사원 전원(133명)에게 배기량 1,500cc급 차량을 제공했고, 실적 우수 영업사원 2명에게는 강남의 아파트(30평 기준)와 BMW 승용차를 임대해줬다. 1년에 한번은 반드시 전직원이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99년 매출액 271억원에 그쳤던 (주)한국 BMS 제약이 지난해 880억으로 성장하고, 세계 65개 지사 가운데 성장률과 1인당 생산성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 같은 사람 중심의 경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 특유의 용인술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부터 '생일휴가'를 실시하고 있는데, 한 간부가 생일에 회사를 나왔다. 소식을 들은 이 사장은 당장 간부를 불러 돌려 보냈다. "당신이 나오면, 직원들도 나오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단 이틀만 신입사원 모집공고를 냈는데도 10명 모집에 무려 1,700명이 몰리는 인기회사로 떠오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84년 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뉴욕주립대,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애리조나대 등을 거친 이 사장이 제약업계에 뛰어든 것은 국제경영대학원을 졸업한 1990년. 굴지의 제약회사 머크사에 들어간 그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며 입사 5년 만에 머크 본사 극동아시아 담당이사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후 바이엘코리아를 거쳐 97년 32세의 나이로 한국BMS 사장이 됐다.
"특별한 비결은 없고, 하루종일 회사 생각만 하고 일에 매달린 거죠." 머크사 영업사원 시절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아시아 출신 의사들을 집중 공략, 엄청난 실적을 올렸던 이력에서 그의 수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장은 "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창의적인 사고력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기른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보다 앞서가도 시련은 있는 법. "CEO는 자기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나름의 CEO관을 밝힌 그는 "책임지는 사람은 언제나 외로운 법"이라고 말했다. "동기 모임에 나가면 모두 과장, 차장이라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때면 남모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며 웃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 이희열 사장은 누구
1965년 서울생
1984년 서울 여의도고 졸업
1988년 미 애리조나대 졸업
1990년 애리조나대 국제경영대학원 졸업
1990년 7월 미 머크사 입사
1995년 9월 머크사 미국본사 극동아시아 담당이사
1997년 3월 (주)한국 BMS 제약 사장
■ 한국BMS제약 어떤 회사
115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퀴브(BMS)가 1997년 한국에 진출해 건립한 자회사. 미국 본사에서 생산된 항암제 '탁솔'을 비롯한 각종 의약품, 의료기기 등을 판매하고 있다.
(주)한국 BMS 제약은 99년 매출액 271억원을 기록한 후 2000년 414억원, 2001년 690억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880억원을 기록, 세계 65개 BMS 지사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출범 당시 40여명에 불과하던 직원 수가 현재 202명으로 늘어났고, 다국적 기업이지만 단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들이 일하고 있다. 본사 방침에 따라 경쟁사를 비방하거나 부당한 판매촉진 행위를 하지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사람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는 이희열 사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인턴제도를 실시하는 등 인재양성 프로그램에 힘쓰고 있다. 1년에 2∼3명씩 미국 본사, 홍콩 중국지사 등에 파견근무를 보내는 것도 이 때문.
밤늦도록 발 품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으로 여성을 기용하는 등 여성인력 우대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133명 영업사원 가운데 20여명이 여성이고, 간부진에도 여성이 다수 포진해있다.
주력품목은 항암제 '탁솔'과 항불안제 '부스파' 등. 지난해부터 FDA가 공인한 세계 유일의 편두통 치료제 '엑세드린'과 미국 점유율 90%를 기록한 피부건조증 치료제 '락 하이드린' 등 일반 의약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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