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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서울은 과연 평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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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서울은 과연 평온한가

입력
2003.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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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기이할 만큼 평온하다"고 르 몽드는 보도했다. 르 몽드 뿐이 아니다. 북한 핵으로 인해 고조되는 한반도의 긴장을 취재하러 온 외신 기자들은 한결같이 서울의 평온함과 한국인들의 태연함에 놀라고 있다.부시 미국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전쟁을 포함한 모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을 때린다는 것은 곧 남한의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서울은 왜 이렇게 조용한가.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북한의 온갖 위협에 면역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핵 위협만 해도 지난 93년 이미 한차례 겪었기 때문에 북한이 구사하는 '벼랑 끝 전술'쯤으로 넘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을 완화시켰다는 것도 큰 이유다. 식량부족을 겪는 북한이 어떻게 전쟁을 감당하겠느냐는 생각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 간 상황인데 북한까지 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패닉 상태를 면하고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 다 보면 한국은 지금 평온하지 않다. 햇볕정책에 대한 갈등이 폭발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전쟁위협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과거 위기가 왔을 때처럼 달러를 사들이거나 라면을 사재기하지 않을 뿐 불안과 혼돈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오늘의 불안과 혼돈은 가치관의 혼란과 불신에서 오고 있다.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시위가 확산되면서 골이 깊어진 국민사이의 갈등은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햇볕정책에 비판적이던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 뿐 아니라 햇볕정책 지지자들에게까지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미시위는 미군철수를 부르고 미군이 철수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전해지는 주한미군 감축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촛불시위의 배후에 적화세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광화문 촛불시위를 보며 소름이 끼쳤다고 말한다.

대선결과에 충격을 받아 하루 밤새 입이 돌아갔다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북에서 공산당에게 재산을 뺏기고 남하한 그 할아버지는 진보세력의 집권과 미군철수 등으로 다시 재산을 뺏기는 사태가 올 까봐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그런 식의 막연한 불안이 널리 퍼져 있다.

북한 문제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며 햇볕정책을 지지해온 사람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대북 비밀거래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그들은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들은 참담한 심정에 빠져 할 말을 잃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8일자 해설기사에서 노무현 당선자의 방미 사절단 중 한 사람이 워싱턴의 저녁 모임에서 "북한이 붕괴하는 것 보다 핵을 갖는 것이 낫다"고 발언하여 좌중을 경악케 했다고 밝히고 "한국대표단의 생각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우주의 행성들이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라고 쓰고 있다. 그 발언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당선자 주변에서도 가치관의 혼란이 자주 목격되어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 평온하게 보이는 한국은 지금 갈등과 혼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를 불신하고 혐오하고 조롱까지 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도덕적 붕괴가 혼돈을 심화시키고, 노 당선자 주변의 정리되지 않은 의견 제시가 불안을 부채질 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내부의 불신과 혼돈이다. 우선 남북관계에서부터 불신을 씻어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은 많지 않다. 자신이 진실을 밝히느냐, 남이 밝히게 하느냐는 두개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햇볕정책의 창시자인 그가 할 일은 햇볕정책의 도덕적 붕괴가 몰고 올 반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 과오를 거름 삼아 대북정책에 분명한 룰을 만들도록 도와야 한다. 두주일 남은 임기 안에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앞으로의 대북정책이 법이라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분명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다.

/장명수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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