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녹지공간과 풍부한 휴식시설,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호수공원과 바둑판 모양의 도로망… 낮에 보는 일산신도시는 쾌적한 전원도시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어둠 속의 일산신도시는 휘황한 네온사인이 춤추는 환락타운으로 변신한다. 낮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 그래서 밤의 일산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여기가일산신도시가 맞냐?"고 반문할 정도다.7일 밤 12시께 일산신도시 마두역 부근 9층 짜리 건물. 울긋불긋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이 건물은 늦은 시각인데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2차, 3차를 외치는 30∼50대의 남성 취객 사이로 20, 30대의 미시족, 그리고 중년 주부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7층에는 모텔, 8층에는 나이트클럽, 9층에는 룸살롱이 들어와 있다. 그것도 모자라 2∼5층에서는 화상채팅방 스포츠마사지점 노래방 퇴폐이발소 댄스교실 사우나 등이 손님을 부르고 있다. 유흥업소와 러브호텔이 함께 입주한 이른바 '환락빌딩'이다. 반경 500m 안에 나이트클럽 단란주점 등이 줄지어 있어 '원스톱 환락타운'을 연출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30∼50m 떨어진 곳에 아파트단지가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과연 쾌적한 주거 신도시인가를 의심케 한다.
김선자(44·여·일산구 마두동)씨는 "술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싸우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칠 때가 많다"며 "베란다 문만 열어도 유흥업소, 여관 출입자가 눈에 들어와 민망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쾌적한 베드타운을 표방하는 인근 화정지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덕양구청 뒷편 주택가의 8층 건물에는 퇴폐이발소와 화상방은 물론 여자의 알몸을 엿볼 수 있는 유리방, 공주방까지 들어와 있다. 6, 7층에는 초·중학생 학원이 입주해있어 아이들마저 유흥업소에 노출돼 있다. 회사원 박모(46)씨는 "이 꼴 보기 싫어 서울로 이사가야 겠다"고 말했다.
유흥업소가 번창하는 이유는 고객이 그만큼 많기 때문. 반대로 유흥업소가 밀집해있어 고객이 몰린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일산신도시는 서울 등에서 온 원정 취객들로 밤마다 성시를 이룬다. 학교정화구역 등이 아니면 유흥업소가 들어서는 것을 법으로 막을 재간이 없다. 러브호텔도 단독 건물 건축은 엄격히 규제되지만 건물 일부를 임대하면 별 어려움이 없다. 향락빌딩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향락빌딩은 백석역 마두역 등에 10여개나 되는데 공사 진행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곧 20여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정이 이러자 "법적인 제재 수단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던 고양시도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백석동 대화동 탄현지구 화정지구 등 유흥업소 러브호텔 밀집지역 4곳을 지난달 특별관리지구로 지정한 것. 이곳 유흥업소에는 공무원과 시민감시요원을 배치, 불법행위를 밀착 감시하게 할 계획이다. 내달 공중위생관리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숙박업소가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을 받는 행위도 단속하고 윤락행위 적발 업소에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불법행위가 3번 이상 적발되면 허가 취소와 함께 단전, 단수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강현석 고양시장은 "세무 소방 행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향락·퇴폐업소의 불법행위를 뿌리뽑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회사원 김모씨(40·일산구 주엽동)는 "고양시가진작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강력한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말했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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