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겁니까."800여억원의 1등 당첨금이 걸린 로또복권 추첨이 진행된 8일 오후 8시45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사당전철역 인근 롯데리아에서 TV로 추첨을 지켜보던 로또 공동구매 회원 10여명의 입에서는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관련 책자 등 온갖 자료를 토대로 선정한 숫자를 공략, 모두 300만원을 투자했지만 3등 이상 당첨자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 모임 운영자 송모(34)씨는 "한순간에 대박의 꿈이 사라져 회원들이 허탈감을 넘어 충격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감출 수 없는 허탈감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로또 '대박'의 꿈은 단 10초만에 '쪽박'의 현실로 나타났다. 복권을 구입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1만원짜리 5게임의 숫자(30개)를 모두 조합해도 1등 행운의 숫자 6개와 같은 숫자는 2∼3개에 지나지 않았다"며 낙담을 금치 못했다. 공동구매로 15명이 모두 800만원의 복권을 구입했다는 식당 종업원 김모(29)씨는 "4등 당첨자 1명과 5등 당첨 일부가 고작이었다"며 "1주일동안 미쳐서 살았는데 아쉽고 허탈하기만 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어렵사리 4개, 5개의 당첨 숫자를 맞히고도 지난번 회차의 10분의 1에 불과한 당첨금을 받아야 하는 1만여명의 3등 당첨자들과 70여만명의 4등 당첨자들은 더욱 어이가 없다. 회사원 김영석씨(36)는 "4등 당첨 사실을 확인하고 당첨금으로 무얼 살까하고 고민했지만 당첨자가 많아 당첨금이 2만7,000원으로 줄었다는 말에 맥이 빠졌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전세값으로 로또 500만원어치를 샀는데 5등짜리 하나도 안됐다'는 등의 안타까운 사연이 잇달았다. 실직한 40대 가장이라는 한 네티즌은 "대출받아 300만원이나 샀는데 4등 8개와 5등 13개가 당첨됐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넋두리를 쏟아냈다.
열기 수그러질 듯
대부분 복권 구입자들이 높은 당첨의 벽을 실감한 터라 다음 번부터는 다소 열기가 가라앉을 전망이다. 국민은행 이인영 복권사업팀장은 "3주 연속 이월되면서 당첨금이 8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났다"며 "앞으로 이런 판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낮고 초기의 이상열풍도 곧 사그러들 것"이라고 말했다.
평상생활로 돌아가라
전문가들은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상심을 되찾을 것을 주문했다. 하지현(河智賢)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은 "공허감을 메울 강한 자극을 찾기보다는 이타심 등의 정신적 가치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이동렬(李東烈) 교수도 "큰 기대만큼 실망도 큰 것은 인지상정"이라며 "'복권 한 장을 사면서 자선사업을 한다'는 식으로 마음가짐을 가볍게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부 복권사업자들이 로또복권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나서 로또복권이 법정시비로 비화할 전망이다. 인터넷 국민은행 주택복권 판매대행업체인 L사의 이모 사장은 "로또복권은 개별법에 따라 발행하는 다른 복권과 달리 정부부처 2개 기관이상이 합의해 만든 연합복권으로 법률적 근거도 없다"며 "로또복권의 판매금지 가처분신청과 발행중지 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 1등 13명 나온 이유
10회차 로또복권 추첨에서 1등 당첨자가 13명이나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행운의 숫자 6개를 모두 맞춰 1등에 당첨될 확률이 814만5,060분의 1인데도 이런 행운을 거머쥔 사람이 13명이나 나온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유는 간단하다. 로또복권을 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10회차 판매금액은 2,608억원, 게임당 베팅 금액은 2,000원이므로 한 사람이 한 번씩만 베팅했을 경우 10회차 참가자는 무려 1억3,000만명. 그리고 1등 당첨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므로, 1등 당첨자 수(참가자수에 1등 당첨확률을 곱한 것)는 평균적으로 15.96명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15.96명이 아니라 1명만 당첨돼 당첨금을 싹쓸이할 확률은 어떻게 될까. 기초통계학 상의 '포아송(Poisson)분포' 공식에 따라 값을 구하면 정답은 대략 4조5,235억분의 1. 결국 1억3,000만명(베팅횟수)이 참가한 이번 10회차 추첨에서 1명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4조5,235억분의 1이었던 셈이다.
/김관명기자
● 어떻게 바뀌나
전국민을 복권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로또복권의 1등 당첨금이 대폭 줄어든다. 우선 11회차(15일 추첨)부터는 당첨금 이월횟수가 현재 5회에서 최대 2회로 제한된다. 다시 말해 11회차 추첨을 포함해 2주 연속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3회차(3월1일)에서 어떻게든 이월금액을 처분한다는 얘기다. 13회차에도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 2등 당첨자가 1등 당첨금액을 균등하게 나눠 갖는다.
정부는 또한 상반기 내에 제정,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통합복권법을 통해 로또 1등 당첨금의 배정률(5등 당첨금 제외한 나머지 당첨금의 60%)을 하향 조정하고 현행 10만원인 1인당 최대 구매금액도 낮출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로또복권을 팔거나 1인당 최대 구매금액을 초과해 판매하는 업소를 집중 단속, 위반시 판매계약 해지 등의 강력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현재 복권을 청소년에게 팔거나 1인당 10만원 이상 팔 경우 1차례 위반시 10일간 판매정지, 2차례 위반시 20일간 판매정지, 3차례 위반시 판매계약 해지 등의 제재조치가 취해지지만, 법적 규제는 아니다. 정부는 이에 따라 통합복권법에 관련 처벌 규정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당첨금에 대한 세율도 높아질 전망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최근 "로또 당첨금에 대해 분리과세하는 것은 소득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조세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며 "당첨금에 대해 종합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복권 당첨금은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종합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고 22%의 소득세만 원천징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소득과 합산해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종합소득세를 부과할 경우 39.6%의 최고 세율이 적용된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 로또 전문가 美 게일 하워드
"로또는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아 매회 1장 이상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게임입니다. 잃어도 상관없는 여유자금이 있는 경우에만 심심풀이로 투자하는게 바람직합니다."
세계적 로또 전문가인 미국의 게일 하워드(Gail Howard·여·사진)씨는 9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로또 열풍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잘 나가던 주식중개인이었던 그는 로또 당첨 숫자가 주식시장처럼 일정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에 착안, 1982년부터 당첨 숫자 분석을 토대로 로또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담은 서적을 출간해왔다. 특히 그의 투자 방식에 따라 74명이 9,700만 달러의 대박을 터뜨리면서 명성을 쌓아왔다. 지난해 11월 그의 저서 '로또 마스터 1권: 행운의 숫자조합하기'가 국내에서도 번역출간됐다.
-로또의 매력은.
"번호를 선택해 구입한 순간부터 추첨 때까지 생활에 지친 현대인에게 꿈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당첨되면 거액의 돈으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발매 2달 만에 한국에선 폭발적 인기를 끌었지만 부작용도 많은데.
"한국적 현상이라기 보단 당첨금이 치솟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이다. 일본은 대만이나 한국과 달리 로또 관련 뉴스가 미디어에 차단돼 로또 열기가 전혀 없다."
-합리적인 투자 방법은.
"행운의 1등 당첨자가 탄생하기 위해선 수백만명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높은 만큼 여윳돈이 없는 사람은 매회 로또를 구입해서는 안 된다."
-로또 수익금은 어떻게 쓰여야 하나.
"미국처럼 교육과 노인 문제를 개선하거나 공원 건설 등 공익적인 성격에 쓰여야 한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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