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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45>사과나무가 꽃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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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45>사과나무가 꽃피기까지…

입력
2003.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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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껍질을 까 놓으면 갈색으로 변합니다. 사과 속 철분이 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사과의 냄새나 맛, 색에 관련하는 페놀계 화합물이 산화 효소와 공기의 영향으로 그리 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만들었다는 선악과. 우리는 이 금단의 열매를 사과로 많이 표현하지만 원산지를 추정해 보건대 무화과 종류의 열매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문밖에 서 있는 사과나무 이야기를 좀 더 할까 합니다.

지금 사과나무는 휴면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동물이 겨울잠을 자듯이 자라기 부적당한 기간에 생육을 멈추는 현상을 말하지요. 여름이 가면서 낮 길이가 짧아지면 사과나무는 휴면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온도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해의 길이로 계절을 인식하는 것이죠.

사과나무가 잠을 깰 때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겨울동안 0∼7도의 기온이 사과나무 눈에 1,600시간 정도 축적되면 휴면이 타파되고 겨울눈(冬芽)이 발아할 준비를 합니다. 이 시기가 2월 하순쯤 되니까 지금이 잠을 깨기 직전입니다.

이 때에는 겨울을 준비하면서 멈추었던 여러 호르몬이 분비되고 호흡량도 늘어납니다. 물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입니다. 흔히 추운 겨울을 지낸 나무일수록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적어도 추운 겨울을 충분히 지낸 나무들만이 새싹을 내보낼 수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깨어난 눈이 쑥 자라오르게 만드는 것은 온도입니다. 3월이 지나 온도가 상승하면 눈이 부풀어 오르고 뿌리에 저장되었던 양분이 수액에 담겨 이동하지요. 우리가 초봄에 먹는 고로쇠 수액은 이를 가로챈 것이지요. 물론 나무마다, 품종마다, 혹은 지역마다 시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눈에서 새순이 올라와 꽃과 잎으로 차례로 갈라지면서 꽃송이 혹은 잎들을 펼쳐내지요. 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이미 지난 초여름에 꽃의 형태로 분화를 시작한 것들입니다. 정말 철저히 준비하고 있지요?

나무에 따라 잎눈과 꽃눈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사과나무는 꽃눈이 잎과 함께 있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와 잎이 나는 시기가 같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물론 잎만 나는 눈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만. 하나의 눈에서 보통 5개의 꽃이 나옵니다. 5개 꽃이 피는 순서는 어떨까요? 가운데부터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피어나지요. 꽃 피는 일에도 순서가 있는 것이랍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었다고 하지만 겨울잠에서 깨어난 사과나무가 그 순결한 흰 꽃을 피우기 위해서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지면이 짧으니 아무래도 열매 얘기는 돌아올 가을을 기약해야겠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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