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무분별한 기업 접대비 지출을 강력히 억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기업 투명성 확립 및 부정부패 근절을 위해 접대비 한도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당위론도 많지만, 기업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억제방안은 오히려 불법과 탈법을 조장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현실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9일 인수위에 따르면 인수위 정무분과는 이번 주 중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범(汎) 경제부처 관계자들과 회의를 갖고 접대비 억제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기업들의 '흥청망청'식 사치성 접대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기업 경쟁력약화 및 부정부패, 밀실거래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세법상 한도 초과분까지 포함할 경우 연간 접대비가 5조원에 육박,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기업간 공정경쟁 풍토를 해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비과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접대비 손금 산입한도가 계속 축소돼온 데다 2000년부터는 기업 기밀비마저 폐지된 마당에 추가로 접대비 억제방안이 나올 경우 기업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재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접대비까지 축소하면 경제활동에 타격이 심할 것"이라며 "접대문화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한 손금 한도액을 억지로 줄이면 가짜영수증 등의 부작용이 양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정부 지분이 남아있다 보니 접대비 제약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현실적으로 도저히 지키기가 어렵다"며 "은행 전체 접대비로 책정된 액수로는 지점 1개도 충당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접대비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공기업이나 은행 등에서 판공비를 급여에 포함시키면서 이에 따른 병폐도 속출하고 있다. 판공비를 안 쓸수록 봉급이 늘어나게 되면서 접대비 지출을 거의 안 하는 임원들도 크게 늘었다.
이를 막기 위해 자산관리공사는 판공비가 급여에 포함된 2001년부터 임원들이 월 50만∼100만원씩 갹출해 공동 업무추진비를 마련했는데 이를 경조사비 등으로 사용한 연원영 사장이 최근 '업무상 횡령'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공동 판공비 조성이 접대비가 모자라는 공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 공적자금투입 은행 등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는 점을 감안할 때 연 사장 입건은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처벌이라는 지적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접대비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인수위가 무조건 억제에 나서는 것보다 기업들의 실태를 먼저 파악해본 뒤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