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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누더기

입력
2003.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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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쥘리에 지음·이기언 옮김 현대문학 발행·9,000원프랑스 시골 농가에서 난 지 한 달 만에 어머니와 헤어졌다. 양부모와 다섯 누이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친어머니는 정신병원에서 굶어 죽었다. 소년군사학교 재학 중에 소대장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다. 졸업한 뒤 의사가 되려고 군의관 학교에 들어갔다가 중퇴했다. 잠시 교편을 잡았다가 그만두고 글쓰기에 투신했다. 그의 삶이 곧 문학이었다. 그러나 샤를르 쥘리에(69)가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기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 아홉이 돼서였다. 예순 둘에야 '누더기'를 탈고했다.

'누더기'는 쥘리에의 인생이다. '그 비극이 닥쳐서 네 어머니가 입원했을 때 이웃 사람들이 널 맡아 몇 주 동안 보살펴 주었어'라고 소설 2부에서 삶의 기록을 시작한다. 작가는 '너'라는 2인칭 주어를 사용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일곱 살에 낳아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됐다. 마음의 몽우리가 점점 커졌다. "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그런 운명을 겪지 않아도 되었겠지. 넌 어머니의 종말에 책임을 져야 해. 어머니! 당신을 무덤에 밀어넣은 이 아이를 용서해 주세요!" 생의 조각을 모으면서 쥘리에는 무엇보다 아프고 소중한 파편이 친어머니에 대한 회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인생을 엮어 1부에 실었다. '당신을 부활시키고자 합니다. 당신을 감싸주던 그 빛, 하지만 어느날, 당신과 내겐 불행하게도, 산산이 부서져버린 그 빛을 생각하며, 당신이 살았던 그 세월과 겨울들을 따라가며, 당신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배움을 갈망했지만 결코 소망을 이룰 수 없었던, 농부의 맏딸. 소진되는 인생에 좌절해 자살을 기도한, 네 아이의 어머니. 정신병원에 수용돼 서른 여덟의 나이로 아사한 여자. 그 어머니의 삶을 더듬으며 쥘리에는 마음의 몽우리가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문장이라는 바늘로 한 땀 한 땀 섬세하게 누더기를 기우며 그는 마음의 그늘과도 화해한다. "넌 숲을 빠져 나왔어. 안개가 걷혔어. 네 상처들도 아물었어. 삶이 안겨주는 고통과 절망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제 너는 삶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것인지를 네 육체의 모든 감수성을 통해 알고 있어."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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