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盧)당선자'도 부럽지 않습니다. '로(로또)당첨자'만 된다면…."7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인근의 S극장 앞. 생면부지의 직장인과 학생 30여명은 각자 6자리 숫자를 기재한 수십장의 로또복권 OMR 카드를 한 사내에게 제출한 뒤 함께 행운을 빌었다.
인터넷 모임방에서 만난 이들은 '대박중의 대박'이라 할 당첨금 1,000억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로또 공동구매'모임에 동참했다. 모임 운영자인 대학생 이병철(李昺喆·27)씨는 "공동구매 공고 이틀만에 7만명의 회원이 모여 10억원 이상의 투자가 가능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1명당 로또 25게임 값인 5만원씩을 베팅하고 당첨금은 참여인 수만큼 균등 분배한다는 것이 이들의 내부원칙. 인근 판매점에서 로또 영수증 출력에 열중이던 이씨는 "영수증은 금고에 보관한 뒤 내일 이곳에 다시 모여 당첨번호를 확인하기로 했다"며 "1등에 당첨되면 모두 국민은행 본점으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서울 장안평의 한 중국집에서는 '로또 투자설명회'가 열렸다. 식당을 통째로 빌린 이 집 종업원 김모(29)씨는 손님 50여명을 상대로 "이론상의 1등 당첨확률은 814만분의 1이지만 그간 확률이 높게 나온 특정번호를 잘 고르면 5,000만원만 베팅해도 1등에 당첨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씨는 "서로가 못믿는 탓에 균등분배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당첨자가 수수료라도 떼주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1등 당첨금 1,000억원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일반인들의 로또 광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운명의 추첨을 하루 앞둔 7일 기업형 펀드격인 로또 공동구매모임이 전국 각지에 속출했고 '마지막 선택'을 위해 과외모임을 결성한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너도나도 허황된 기대심리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에서 극소수의 당첨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당첨자들이 정서적 공황과 허탈감에 빠져들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감도 높아가고 있다. '당첨금은 내 몫'이란 맹목적 기대심리와 '사촌이 땅사면 배아프기'식의 질시감등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는 것. 매번 로또복권을 샀던 공무원 박모(46)씨는 "주말만 되면 휴식은 커녕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란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공동구매에 참여했다는 직장인 정모(24·여)씨는 "밤마다 공동구매 모집인이 당첨금을 혼자 챙겨 달아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강웅구(姜雄求·정신과) 교수는 "로또 추첨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심정과 다를 바 없다"며 "모든 것을 걸고 인생역전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단지 심심풀이로 해보겠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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