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가 연일 일본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을 때 히로시마(廣島) 평화공원을 찾았다.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세계에서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현장이다. 무모한 전쟁을 도발해 화를 자초했으면서도 유달리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지만, 평화공원과 기념자료관은 원자폭탄의 가공할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히로시마의 상징이 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원폭돔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됨을 말해준다. 원폭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조형물에는 "편안하게 잠드시라. 다시는 이 같은 재앙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 이니까"라고 새겨져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리틀 보이(꼬마)'라 불리었다. 원통 모양에 길이 3m 무게 4톤. 50여㎏의 농축우라늄 235가 들어있다. 북한이 플루토늄을 대신한 핵 개발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한 바로 그 물질이다. 꼬마 폭탄은 고성능 폭약 1만5,000톤이 폭발하는 위력을 발휘하며 35만명의 히로시마 인구 중 14만명을 순식간에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
■ 핵 카드를 가지고 벼랑 끝 생존전략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에게 히로시마를 한번 방문할 것을 정말로 권하고 싶다. 탁상 위의 관념적 핵 카드가 어떤 참극을 가져올지를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원자폭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졸지에 인생을 마감한 수많은 사연들이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실제로 일제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이 원자폭탄인지를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미국은 폭탄 투하 4개월 전부터 일본의 17개 도시를 공격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 평화공원 한 쪽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이 별도로 서 있다. 원자폭탄의 진정한 피해자들이다. 일본인은 국가가 전쟁을 도발했지만, 한국인들은 강제로 징용돼 어처구니 없는 피해를 당했다. 위령탑은 당시 히로시마 주변에 10여만명의 우리동포가 징용이나 강제징집 돼 있었고, 이중 2만여명이 원자폭탄으로 죽거나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은 위정자의 잘못된 판단이 자국민은 물론, 주변국가의 무고한 양민까지 어떠한 참상에 몰아 넣을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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