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7일 대북 비밀지원 사건의 해법으로 국회 비공개 증언 방침을 정한지 하루만에 '원칙적 공개'로 후퇴한 것은 야당과 여론의 압박에 따른 것이다. 이는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과 임동원(林東源) 통일특보의 증언 여부, 증언의 공개 범위 등에 대해 청와대의 입장이 대략 정리됐다는 뜻이기도 하다.우선 청와대측이 방향을 바꾼 이유는 '청와대의 자발적 협조가 없을 경우 특검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해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측의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의 한 핵심 관계자는 "언론의 취재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국익을 앞세워 비공개를 고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공개적 증언을 통해 규명돼야 할 의혹으로 대북지원금의 규모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성 여부 산은 대출과정에서의 외압 여부 등 대략 3가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현저히 국익에 위배될 경우 비공개로 하겠다'는 부분이 더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북한과의 이면 계약, 북한 최고위층의 요구 사항, 비밀지원 협상, 자금 세탁 및 송금 경로, 국정원 개입의 전모, 대북 지원금의 사용처 등이 비공개 항목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비공개 부분이 더 많을 수도 있고 이를 둘러싸고 다시 정쟁이 격화할 소지도 다분하다.
청와대에서 이날 '원칙적 공개' 방침이 거론되면서 실정법 위반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흘러나온 것은 사건 관련자에겐 매우 민감한 대목이다. 청와대의 사전 인지 및 개입 여부에 따라 사법처리의 대상과 수위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또 향후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더 이상 악역을 맡겨서는 안되고 대신 '총대를 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맞물려 있다.
하지만 여권의 고육책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여전히 박 실장 또는 임 특보가 아니라 김 대통령이 해명하고 사과할 것을 주장, 여야 협상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니다. 또 한나라당은 김 대통령이 해명 하더라도 특검제는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아직 접지 않고 있다.
다만 청와대측이 또다시 일보후퇴, 김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서기로 할 경우엔 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도 있다. 누가 진상을 공개할 것이냐에 대한 결론이 나면 그 다음엔 공개 및 비공개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 특검제 실시 여부 등을 둘러싸고 협상이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사건 해결을 위한 여야 줄다리기는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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