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A씨 "방학동안 우리 아이는 TV앞에서 살았어. 만화전문 채널에서 하루 종일 만화를 틀어주니…. 예전에는 어린이 시간대에만 만화를 봤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어요."강사 "엄마들도 클 때 캔디, 유리의 성이니 하는 만화에 푹 빠져 지내지 않았나요? 만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꼭 필요한 또래문화라고 봐야지요"
학부모 B씨 "디즈니에서 나오는 영화는 교육적이라서 권하는 편인데, 아이들은 선정·폭력등 문제가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만 보려고 해요. 만화책도 교육적인 것보다 시시한 내용만 찾구요."
강사 "아이들이 일본만화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해요. 디즈니만화는 기승전결의 전개가 느린 반면 일본만화는 에피소드마다 기승전결이 있는데다 아이들에게 만화속 주인공과 동일시하게 하는 효과도 크지요. 또 디즈니만화라고 다 좋다는 생각도 위험해요."
1월 셋째 주 수요일 저녁 7시 대학로 소극장 민들레영토에는 자녀의 손을 끌고 학부모 40여명이 모였다. 인터넷 학부모 동호회 '마음에 드는 학교'가 마련한 부모교육 강좌 '불량강의실'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만화 중독에 대한 평소 걱정을 쏟아놓았다. "일본 순정만화를 접한 아이들이 성적 노출이나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은 아닐까", "그렇잖아도 과도한 폭력에 노출돼 있는 아이들이 한대를 맞고 열대를 때리는 식의 불필요한 복수가 난무하는 내용을 보고 뭘 배울까" 등 다양하다.
부모와 아이가 갈등을 빚는 문제를 놓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불량강의실'이 다른 부모교육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공부하라' '나쁜 만화 보지 말라'는 정답만을 찾지 않는다는 것.
강의내용에 속으로는 반발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참석자들이 강사에게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심정은 다르다"고 대드는 등 학부모들도 조금은 불량스럽다.
마침 이날 강사로 나선 한창완 세종대(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6살, 10살 된 두 자녀를 둔 학부모. 학부모 입장에서 제시한 답은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같이 보라"는 것.
그는 "부모가 자녀에 대해 권위를 가지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 문화선택권은 아이들이 쥐고 있다"며 "아이들을 TV만화에서 떼어내지 못한다면, 그 시간을 아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찾고 아이의 흥미와 개성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선악의 이분법적 대립이 분명했던 예전의 디즈니영화와 달리 지난 해부터 애니메이션 속에서 악인이 사라졌다"며 "그런 만큼 아이들이 스스로의 사고로 선악을 구별할 수 있도록 상황판단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다음은 한교수가 제시하는 '불량 부모'를 위한 행동 강령.
아이들은 생각보다 여과능력이 뛰어나다. 어릴 적부터 미디어환경에 과다노출되면 자라온 아이들 세대는 미디어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부모와는 다르다. 아이들에게도 선악판별 능력이 있으니 아이들을 믿자.
나쁜 작품도 볼 필요가 있다. 나쁜 작품은 집에서 안 보더라도 밖에서 얼마든지 접하게 된다. 아예 보지 못하도록 차단할 게 아니라, 폭력 선정적인 작품들을 보면서도 왜 나쁜지 이해하고, 혐오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만화보는 시간은 제한한다. 만화전문채널에서 나오는 만화는 시간대에 따라 성인물도 있다. 낮시간이나 심야시간대의 만화는 금한다. 또 하루에 얼마를 볼 것인지 약속하고 나머지 시간은 구체적인 활동과제를 제시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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