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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한강 둔치의 인공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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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한강 둔치의 인공꽃밭

입력
200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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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망치는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때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만 집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운치는 제법 즐겁습니다. 자연히 한강 둔치에 나가는 기회가 많은데 거의 매일 아침 자전거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날아갈 듯이 상쾌합니다.한강 둔치는 아주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자전거길 말고도 걷는 길, 넓은 잔디밭, 갖은 꽃밭들도 있고, 이런저런 운동이나 놀이를 할 수 있는 시설도 기구도 많습니다.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가족단위로 또는 친구들과 이곳을 찾아 즐깁니다. 심지어 새벽 2시인데 동네농구를 하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둔치 풍경이 꽤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억새풀이 우거진 풀밭이 둔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들판'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놀이시설이나 운동장이 늘고, 주차장도 훨씬 넓어졌습니다. 자연히 제멋대로 자라 철의 바뀜을 마다하지 않는 넓은 풀밭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풀밭을 갈아엎고 거기 코스모스가 심기고 해바라기 단지가 만들어지고 유채꽃밭이 일구어지면서 이제 '자연'은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고 할 만큼 '쓸쓸해'졌습니다. 그래서 겨울조차 풍성했던 둔치였는데 이제는 겨울의 둔치 모습이 김장거리 뽑고 난 배추밭처럼 황량합니다.

물론 그렇게 갈고 심고 보살핀 덕에 계절 따라 화려한 색깔이 둔치를 뒤덮습니다. 어느 때는 노란색이, 어느 철에는 빨간 색이, 또 어느 달에는 파란 색이 주종을 이루는데 그 모든 색깔들이 잘 재단된 기하학적인 선을 이루며 더불어 황홀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습니다. 둔치의 본디 풀밭은 이만저만 천덕구니가 아닙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듯 풀밭이 좁아졌는데 얼마 전에 그 옆에서 뜻밖의 푯말을 보았습니다. '이 지역은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입니다.'

'필요'가 있어 '개간'하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으리라는 것도 짐작됩니다. 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편의'를 누리는 사람이고 보면 풀밭이 그렇게 되는 일에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거니와 책임마저 져야 하는 사람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개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준거의 다름입니다. 철 따라 피는 꽃으로 둔치를 색칠해야겠다고 판단한 분들은 아름다움이란 기막히게 통제된 단일한 색깔의 펼침이나 의도적으로 디자인 된 색깔의 통합이라고 하실 듯 합니다. 그러나 들풀을 그대로 두어 겨울에도 그 풍요함을 둔치가 잃지 않기를 바라는 분들의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은 '억지'가 아니라 '제멋대로' 라고 할 수 있을, 그러한 조화가 아름다움의 제 모습이라고 주장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둔치 옆에 살다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철 따라 아름다움을 뽐내는 '가꾸어진' 꽃밭의 영광은 어처구니없이 짧다는 것, 그런데 돌보아주는 이 없는 들풀들은 계절을 넘어 겨울마저 풍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아무래도 억새풀 무성한 풀밭이 사라지면 둔치도 성하지 못할 듯 합니다. 가꾸어 겨우 꽃피는 둔치란 그 계절만 지나면 황폐한 빈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자연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지어내겠다면서 마구 풀을 뽑고 그 자리를 자기 색으로 온통 물들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딱한 일입니다.

지난 여름 홍수 때, 가꾸어진 꽃밭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억새풀 무성한 풀밭은 물이 빠지자 여전하게 둔치를 지키는 모습을 의연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랬다고 하는 사실을 누구에게 인지 간절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겨우 오늘에서야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정 진 홍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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