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 과정에서 김충식(金忠植) 당시 현대상선 사장의 서명이 위조·대필됐다는 의혹이 사실인 것으로 6일 확인됐다. 특히 대출서류상의 김 전 사장 서명이 진본과 다른데다 동일인 여신한도 초과 등 대출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는데도 실무작업을 했던 산은 직원 3명이 최근 인사에서 모두 문책성 대기발령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서류상 명백한 하자가 있는데도 산은 실무진이 대출을 집행한 것은 외부압력이 있었음을 사실상 확인하는 것으로, 이 같은 압력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대북비밀지원 사건을 푸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특감 결과에 따르면 산은 측은 2000년 5월17일(1,000억원)과 6월5일(4,000억원) 현대상선이 제출한 차입신청서에 대출종류나 기한 등 핵심 기재사항이 누락됐고 대표이사 서명이 진본과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산은법이나 여신한도 규정 위반은 물론 금감원에 허위·누락보고까지 하면서 대출 및 연장을 승인했다. 그럼에도 이근영(李瑾榮·당시 총재) 금감위원장과 박상배(朴相培·당시 영업1본부장) 부총재는 감사원측에 대해 "대출과정에 외압이 없었다"고 부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대출실무작업을 맡았던 산은 기업금융1실 현대팀원 L, K, J씨 등 3명은 이번 산은 정기인사에서 '인사부 조사역' 발령을 받아 사실상 모두 좌천됐다. 이들은 특히 대출과정이나 사후 대출 서류 '짜맞추기' 과정에서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의 서명을 위조·대필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4,000억원 대출 당시인 2000년 5월17일과 18일, 6월 5일과 7일에 현대상선이 제출한 대출 신청서 및 약정서상의 김 전 사장의 서명은 감사원 감사 결과 현대상선 직원들이 위·변조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6월29일과 30일, 9월28일, 10월26일 등 4건의 만기연장을 위한 대출 약정서상의 김 전 사장의 서명 필체가 또다른 의혹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회 재경위는 이들 3명의 서명을 받아 국과수에 필적 감정을 의뢰하기도 했으며, 한나라당은 이중 한 명의 필적이 허위서명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실무자에 불과한 이들이 고위층의 지시나 비호 없이 규정을 위반해 가며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출을 주도했겠느냐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당시 영업1본부장으로 여신심사도 하기 전에 대출 종류와 만기일 등 대출조건을 결정해 하루만에 처리하도록 지시한 박 부총재가 이번 인사에서 자리를 보전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산은의 현대계열에 대한 신용공여액은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해 대출 자체가 불법이었다. 따라서 박 부총재에 대한 고위층의 '입막음'용 비호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광옥(韓光玉)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을 부탁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산은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책인사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산은의 한 관계자는 "L씨 등은 현대상선뿐 아니라 현대그룹 전반의 자산관리를 맡았던 실무진"이라고 전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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