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중동 국가들에 스커드 미사일을 어떻게 수출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수사 자료가 6일자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에 공개됐다.이 신문은 1999년부터 2002년 8월까지 유럽 신생국 슬로바키아에서 암약하면서 미사일 부품 등을 이집트로 수출한 북한 부부 공작원 '김점진·이순희' 사건에 대한 슬로바키아 정부측 수사기록을 토대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 행태를 추적했다.
이에 따르면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관 경제참사 출신인 김씨는 99년 북한 정보기관 동유럽 책임자 신동석과 함께 처음 슬로바키아에 나타났다. 이들은 동구와 서구의 중간지점인 슬로바키아의 보안망이 허술하다는 점에 착안해 이곳을 거점으로 정했다.
이어 2000년 11월 김씨 부부는 두 자녀를 평양에 둔 채 벤츠 승용차를 굴리는 아시아계 자본가로 행세하면서 수도 블라티슬라바에 정착했다. 북한 공관이 없는 지역을 거점으로 삼은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의 본격 활동은 2001년 3월 '슬로바키아 신세계 무역'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이 회사의 모든 거래는 이집트 카이로 소재 카데르 연구소로 집중됐다.
이 연구소는 75년 이집트,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의 군사력 증강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나 현재는 이집트 정부만을 위해 활동하는 아랍산업화조직(AOI)의 방계회사이다.
슬로바키아 당국이 압수한 김씨의 거래장부, 여행서류 등은 그가 중국, 러시아, 벨로루시 소재 무역상 등을 통해 1,000만 달러 상당의 화학물질, 트럭, 군용 타이어 등 자동차 부품, 측정기기, 펌프, 고속 촬영 카메라 등을 카데르로 수출한 사실을 보여준다.
구입 물품은 모두 민수·군수 겸용 물자였다. 김씨가 중국 소재 크로쿠스 그룹으로부터 구입한 화학제품 HTPB의 경우 로켓 추진 연료로 활용되는 물질이며, 이 과정에서 김씨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세관 선적 서류에는 다른 화학제품명을 기입했다. 김씨와 거래한 상당수 무역회사는 유령회사로 밝혀졌다.
이 신문은 "김씨가 거래한 물품들은 개별적으로는 유해하지 않으나 한 데 모으면 매우 위험한 조합이 탄생한다"며 "북한은 구매자를 안심시키고 안전한 수출을 보장하기 위해 치밀한 제3국 경유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김씨 부부는 지난해 8월 슬로바키아 경찰이 사무실을 급습하기 직전 유유히 종적을 감추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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