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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울진 사라호 유민" 철원군 마현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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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울진 사라호 유민" 철원군 마현1리

입력
200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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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개(馬峴)를 넘어온 북서풍이 남쪽으로는 대성산에, 북쪽으로는 철책선을 이고 선 적근산에 막혀 멈칫 한다. 서쪽 역시 툭 트인 지형을 보려면 광주산맥을 따라 불끈불끈 솟은 천불산 삼천봉 너머 김화 들이나 철원평야까지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한 번 들어서면 바람도 길을 잃고 맴돌다가 선다는 곳. 주민들은 거기를 '바람돌이 마을'이라 했고, 군인들은 '민촌(民村)' 혹은 '울진촌'이라 불렀다. 경북 울진군의 사라호 태풍 유민들이 개척한 민통선 북방마을, 강원 철원군 근남면 마현1리다.

"논·밭이고 집이고 물에 바람에 다 쓸려 가삣지. 허기사 그거 아니라 캐도 배 곯아서 몬 살았을 끼다. 죽기 아이모 살기로 요까지 온 기지, 뭐."

1959년 추석 새벽(양력 9월17일), 전설 같은 태풍 '사라호'가 훑고 간 경북 울진군(당시 강원도)은 폐허로 변했다. 도에서는 하루 아침에 집과 땅을 잃은 주민들에게 철원군 이주 신청서를 내밀었다. "요(여기) 오모 주인 없는 수복지 논밭이 널려있다 카고, 소출 나올 때까지 도에서 배급도 해준다 캤지." 수해 복구를 해봐야 건질 것도 없고, 더 살아봐야 '늘푼수'가 안보이던 66세대 364명의 주민들은 이듬 해인 60년 4월4일 울진초등학교에 집결, 고향 친지들의 환송을 받으며 25대의 군 트럭에 분승했다. 헌병 지프의 선도로 대관령을 넘고 횡성, 춘천, 화천을 지나는 3박4일의 여정. 젖먹이가 보채고, 멀미에 애 어른 할 것 없이 우유국을 게워내도 '약속의 땅'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고 했다. 남사해(76) 할아버지는 "춘천서는 도지사까지 나와서 일일이 악수함서 광목 이불도 한 채씩 노나 주더마"라고 했다. 만삭이던 문호용(72) 할머니는 화천을 지나면서 딸을 출산, 이름을 아예 '화천'이라고 지었다. "그 아가 벌써 마흔넷이다. 지금 시집가서 아 낳고 잘 산다 아이가."

4월7일. 말고개를 넘어 선 주민들을 반긴 것은 잡초 벌판과 버드나무 싸리나무 군락을 헤집고 선 60여 동의 군 분대(分隊) 천막이었다. "천막 안은 눈이 녹아서 질퍽질퍽한 기 앞이 캄캄하데. 군인들이 마른 풀 한 아름하고 가마이(가마니) 두 장씩 던져 주더마." 이주민들은 거기다 돌 구들을 깔았고, 낫으로는 안 넘어가 톱으로 벨 만큼 굵은 싸릿대로 낭구(나무)해서 바람 많은 겨울을 나야 했다. 군인들이 '좌우정렬 9열 횡대' 흙집을 지어준 것은 이듬해 1월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해 집집이 400평씩 분배된 땅을 개간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이순남(70) 할머니는 "소가 있나 쟁기가 있나. 소시랑(쇠스랑)으로 풀덩쿨을 파냄서 콩죽겉은 땀을 얼매나 흘렸는지 모린다"며 잇몸으로 웃었다. 풀 베기 힘들어 불을 질렀다가 군인들에게 '빠따(매)'를 맞기도 일쑤. 다섯 살에 아버지 따라 이주한 이장 김종호(49) 씨는 "군인이 힘쓸 때 아임니꺼. 당시 50대 어르신들까지 군인한테 안 맞아본 사람이 없을 낍니더"라고 했다. 서울 나가서 술 마시고 민통선 출입증 맡기면 '이북 댕기는 사람(공작원)'이라고 술값도 안 받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청보리쌀 배급도 달포를 못 넘겼다. "4·19가 나서 자유당이 망한 것도 몰랐던기라. 민주당이 들어서고 도지사가 갈리삥께 누가 우리를 챙기 줄끼고." 나물 뜯고 소나무 껍질 벗겨 주린 배를 채웠고, 운 좋은 날은 군인들에게 '짠밥'이나 건빵을 얻어 먹으며 논·밭을 일궜다. 하지만 그렇게 개간한 논은 80년대 초 땅 임자들이 나타나 소송을 걸고, 83년 대법원 판결로 소유권이 인정되면서 보상금 한 푼 못 받고 고스란히 빼앗겼다. 주민 대부분은 그 날 이후 이제껏 소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일부 조합 돈 빌려 땅을 산 이들은 이잣돈에 쫓긴다고 했다.

당시 주민들의 최대 생계원은 탄피를 주워 파는 것이었다. 30리 떨어진 서면 와수리 장에 내가면 탄피 한 관(약 4㎏)에 보리쌀 서너 말을 바꿔줬기 때문이다. "저녁밥 묵고 나모 '등화관제(인민군이 목 베어간다고 가마니로 불빛을 가려야 했다)' 쳐놓고 탄띠를 엮었제." 탄피 반출은 여자들 몫이었다. 장 보러 나고 드는 것도 군인들에게 보고('장보고'라고 했다)하던 시절이었다. 발각되면 곤욕을 치렀기 때문에, 탄띠를 허리에 두르고 그 위에 아이를 업고 안고 검문소를 통과했다. 할머니들 대부분은 지금 요통과 신경통이 '탄피 농사' 탓으로 안다. "한 번은 세 관이나 두르고 지나가는데, 우찌 된 기 검문소 바로 앞에서 탄띠가 흘러 내리는 기라. 엉기적 엉기적 걸응께 군인들이 탄피 찼다꼬 욱대기데. 그래서 내가 '빤스 꼬무줄이 끊어졌십니더. 와요, 바지까지 내리 볼라요' 안캤나." 당시 25살 새색시였던 이순남 할머니의 넉살에 늦은 오후의 마을회관에 핏기가 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대화는 부부 생활 애환으로 이어졌다. 이주 초기 천막이 부족해 가족이 적은 젊은 부부들은 두 세대가 한 동에서 기거해야 했다. "소리가 무서버서 오지 말라꼬 막 꼬집고 밀어내모 더 달기드는 기라." "와, 저 할마이는 시어마이캉 한 방서 6남매나 안 낳았나. 할 거는 다 한다." 김옥순(68) 할머니도 그 천막서 둘째를 가졌다며 웃었다. 개척 1세대의 억척스런 생활력은 대물림을 해 IMF 당시 마현2리(68년 조성된 재향군인 정착촌) 등 인근 마을에는 망해서 고향찾는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마현1리 2, 3세대는 단 한 명도 안 들어 왔다고 했다.

주민들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나 맵고 짜고 비린 음식 등 낯선 풍속이 '강원도의 힘'과 근 반세기를 부딪치며 뒤섞였고, 그래서 많이 곰삭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울진보다 더 울진다운 곳'이 마현1리라고 했다. 한 마을 형님 동생으로 지내던 주민들이 그대로 옮겨와 산데다, 비무장지대 철책이 북상하기 전까지는 마을 앞 5번국도로 목책선이 지나갔다. 수년 전까지도 마을에 오려면 사전에 군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아직도 신분증을 맡겨야 나고 들 수 있다. 해지면 그나마 오도가도 못하는 고립마을로 45년을 지냈기 때문이다. "10년 전 울진 친지들이 관광버스 대절해 놀러 왔다가 '덤벙김치(양념 물에 배추를 담갔다가 건져먹는 울진식 김치)'를 먹어보더니 바로 이 맛이라며 감탄합디다." 주민들은 지난 태풍 '루사'때 울진지역 수재민에게 햅쌀 10㎏ 200포대를 보냈다.

하지만 주민들이 늙고 줄어 걱정이다. 이주 세대주 66명 가운데 남은 이는 마을 최고령자인 장내경(86) 할아버지 등 단 7명. 그 사이 분가하거나 60∼70년대 형제들이 추가로 이주해 가구수는 113가구(400여명)로 늘었지만 65세 이상 노인정 멤버가 67명에 이르고, 40대 미만 세대주 가구는 단 한 집도 없다. 한 때 170여 명이 북적이던 마현초등학교는 전교생 35명이 전부고, 조만간 앞 마을 군인 관사촌마저 옮기면 뭉텅 더 줄어들 판이다. 그래서 이주 기념일(4월7일) 마을 체육대회도 왕년의 떠들썩함은 없고 어른들의 조촐한 술잔치로 변한 지 오래다. 기온이 차 가을 추수 끝나면 뾰족한 농사가 없고, 바람이 많아 시설채소 재배도 힘들다. 한 주민은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했다. 뼈빠지게 농사 지어봐야 빚만 지는 판이니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격'이라는 의미다.

최근에는 그래도 쌀 농사를 오리농법으로 짓고, 느타리버섯도 재배한다. 7,8월 무더위로 남쪽지방 오이가 안 나오는 틈을 타 출하하는 오이농사에 재미를 붙여 지난 해 1만5,000평 규모를 올해 2만5,000평으로 늘릴 참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맨몸으로 홀로서기해서 일군 '제2의 고향' 아입니꺼. 지키야지예. 우짜든지 지키야지예." 이장 김씨는 선친의 피땀을 못 잊는다고 했다.

/철원= 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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