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의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과 폴 월포위츠 부장관이 각각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특사단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 가능성을 언급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물론 럼스펠드 장관 등의 발언은 주한미군의 감축보다는 미군의 세계전략 차원에서의 병력 재배치에 무게가 실려 있다. 미군 당국은 전력의 효율적 운영면에서 한국에 대규모 지상군을 유지하는데 대해 간단없이 회의를 표시해 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통보가 촛불시위로 대변되는 한국의 반미 정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요구, 대등한 한미관계 주장 등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원할 경우 기꺼이 철수할 것이며, 철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럼스펠드 장관의 언급은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었으나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조치는 단순히 한국의 정서를 고려한 차원이 아니라 1989년 넌―워너 법안과 92년 동아시아전략구상(EASI) 등에서 확정된 3단계 주한미군 감축방안을 실행에 옮기는 의미도 강하다. 90년 이 계획의 1단계 조치로 7,000여명의 주한미군이 철수했고 한미 연합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됐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투명한데다 한국의 정권이 교체된 시점에서 병력감축을 언급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등 한국측이 제기하는 제반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전력 효율화를 위한 새 군사전략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주한미군을 재배치하고 위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구상은 휴전선 일대에 전진배치된 병력의 후방배치 및 지상군의 감축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미군측은 지상군 위주의 거대한 병력 유지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해왔다.
그러나 미 지상군의 후방배치는 곧 주한미군의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의 변동을 의미한다. 한강 이북에 주둔 중인 용산의 미8군 사령부, 동두천의 2사단 등은 북한이 침공할 경우 1차적인 공격대상이 됨으로써 미군이 자동개입토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미국이 볼 때는 '남북한 분쟁의 볼모'이지만 우리에게는 '안전판'이었다.
따라서 전방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후방배치는 미군이 자동개입 상황을 피해보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즉,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전진배치한 장사정 방사포의 사정권에서 물러나 있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뿐 아니라 동북아 역학구도의 전면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변화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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