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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통치행위" 적용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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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통치행위" 적용 신중해야

입력
200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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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직전 북한에 거액을 송금하였다는 소문과 폭로가 정부당국의 부인과 은폐 시도 후 뒤늦게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다만 송금의 주도자, 추가 송금 여부 등 구체적인 정황은 아직 안개 속에 갇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논리가 이른바 통치행위론이다.북한 송금문제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긴장완화와 장기적으로 통일이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대통령이 한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었으며, 따라서 이 문제를 법적 기준에 따라 사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검찰은 수사유보 방침을 발표하여 통치행위론에 화답했다.

사실 이 같은 통치행위의 논리가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오랜 동안 법원은 긴급조치, 긴급재정명령, 비상계엄조치 등을 발동하는 대통령의 행위는 통치행위이며, 이는 사법심사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전통적인 통치행위이론을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통령이 정치적 결정으로 한 조치들이 개인의 기본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리고 해당 조치가 추구하는 목적에 비해 과도한 방법과 내용을 갖는 경우에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 여기엔 헌법은 통치기구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송금문제는 위와 같은 통치행위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통치행위는 추상적인 헌법과 구체적인 대통령의 행위와의 관계에서 추상적인 헌법해석의 결과 취해진 대통령의 행위를 존중한다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북한 송금문제는 사실관계의 규명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구체적인 행위가 구체적인 법률에 위반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전통적인 통치행위이론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이러한 경우에는 통치행위이론을 적용할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대통령의 행위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명료하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능력이 제한적인 법률적 기준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경우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상황에서 급변하는 남북관계에 대응하는 대통령의 통일 및 헌법수호의 과제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둘째, 국회의 입법행위는 그 자체 정책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종의 헌법해석 성격이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법률적 기준에 반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은 국회와는 독자적으로 행하는 헌법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실정법에 반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이 통치행위로서의 속성을 가질 수 있다.

후자의 입장을 따르는 경우에도 주의해야 할 것은 통치행위이론이 적용되는 경우는 지극히 한정적이어야 한다.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행위이어야 하며, 개인의 권리의무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하고, 또 명백히 불합리한 수단이라고 볼 수 없어야 한다. 예컨대 1972년 남북공동성명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에 밀사를 파견한 행위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 기소하는 것은 지극히 희화적이다.

그러나 이번 북한송금문제가 위와 같은 요건을 충족시키는지는 의문이다. 이 의문은 법적 기준에 따른 수사권과 재판권의 주체인 검찰과 법원, 정치적 기준에 따라 통제 기관인 국회가 함께 풀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유보결정은 통치행위인가의 여부, 그리고 이를 판단하기 위한 사실관계에 의문과 의혹을 증폭시켜, 탄생을 준비하는 새 정부에 진실규명과 과거청산의 부담을 주는 것이라 안타깝다.

전 광 석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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