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소설에 영화 얘기를 갖다 쓰고 영화 산문집까지 내긴 했지만요."(김영하)"저는 좋아해요. 영화광이에요. 그런데 만화 그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고요."(이우일)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소설가 김영하(35)씨와 만화가 이우일(34)씨는 이렇게 답했다. '김영하·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마음산책 발행)를 함께 펴낸 두 사람이 3일 막 나온 책을 들고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표지그림을 보면 손이 안 갈 수가 없고, 펴서 읽다 보면 안 살 수가 없어. 우리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거야"라며 쿡쿡 웃었다. 홍익대 앞에서 자주 만난다는 두 사람은 오후 느지막이 커피를 마시면서 영화에 대한 '고백'을 하는 것으로 '출판기념회'를 시작했다.
김영하 "네가 그린 표지 그림 말야, '화양연화'에 나오는 장만위잖아. 장만위한테는 영광이지 뭐야. 단행본의 표지모델로 나온 적이 없었을 테니. 게다가 한국말을 모르니까 표지만 보고 자기를 다룬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우일 "닮지 않았다고 화낼지도 몰라, 형. 솔직히 화살 맞고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면서 눈물 흘리는 건 영화에도 안 나오는 장면이잖아. 사람들은 이 책 보고 그럴지도 몰라. '영화랑 글이랑 그림이랑 어째 하나같이 맞질 않는 거야'라고."
김영하 "'화양연화' 보면서 '러브 어페어' 생각도 났어. 그 영화도 굉장히 좋아하거든. 알 거 다 알고, 상대방이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고. 절제하는 사랑이랄까. 30대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감정이지. 20대는 절대 모르지."
이우일 "그것 봐. 형은 영화 얘기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거라니깐. 한참 읽다 보면 기르던 개 죽은 얘기, 도널드덕 인형 사서 사진 찍은 얘기, 이상한 택시기사 만난 얘기…. 그런데 재미있더라. 영화도 결국은 사람 사는 얘기라서 그런가 봐. 그래서 나도 내용에 끼워 맞추지 않고 내가 본 대로 그렸어."
김영하 "우리의 모토는 '해석에 반대한다'야. 우리 책에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 나올, 영화감상기라든지 일러스트와 결합된 산문집의 표준이 될 거야."(웃음)
이우일 "내 만화에 서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영화 자체가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 전작 장편 만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고민이야."
김영하 "나는 영화를 보면서 꿍얼꿍얼대. '친구'를 보면 서사적으로 빈틈이 많아. 마약중독자였다가 느닷없이 조폭이 되고.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호하고. 자꾸 따지다 보니까 영화에 푹 빠지기가 어려워. 배우들도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량자오웨이나 기타노 다케시의 연기를 보면 '내가 영화를 찍고 있긴 하지만 영화에 빠져 있진 않아'라는 마음이 전해지거든. 그게 매력적이란 말야."
이우일 "이번에 만화 그린 건 어떤 영화 보는 것보다도 기쁘고 즐거웠어.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한 적이 있었나 싶어. 가만히 보면 솔직한 내 생각, 내 느낌이 그림에 아주 잘 섞여 있거든. 좋아해서 한 일이라 그런가 봐."
김영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유머와 페이소스, 아이러니, 눙치기 같은 것들을 얻게 됐어. 삶에 대한 여유 있는 태도랄까. 다음 주에 과테말라에 가서 3개월 있다가 올 거야. 여유를 배웠으니 그걸 밑천 삼아 좋은 작품 써야지."
이우일 "여행이라… 우리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가서 열흘 넘게 같이 먹고 자고 했잖아. 사실 형 한테 부산 같이 가자고 해놓고 형이 재미없어 할까 봐 걱정했어."
김영하 "너는 덩치답지 않게(이우일씨 키는 189㎝) 예민하고 소심하다니까. 나는 나랑 같이 여행하는 사람은 당연히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거든. 뻔뻔한가 봐. 이 책만 해도 그래. 영화보다 그 영화에 대해 쓴 내 글이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해."
"영화에 '아부'하지 않고 자기 매체의 독자성을 주장한 것이 '김영하·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라는 두 사람의 이날 결론은 "소설이 최고" "만화가 최고"였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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