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2월6일 폴란드 정치인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가 크로스노에서 태어났다. 1982년 몰(沒). 고무우카는 흔히 '폴란드의 10월' 또는 '10월의 봄'이라고 불리는 1956년의 부분적 정치·경제 자유화를 이끈 지도자다. 그는 그 해 10월부터 1970년 12월까지 통일노동자당(공산당) 제1서기로서 폴란드를 다스렸다.'폴란드의 10월'은 통일노동자당 치하에서 일어난 최초의 노동자 폭동인 1956년 6월의 포즈난 폭동에서 비롯되었다. 폴란드 서부 포즈난주(州)의 주도(州都) 포즈난시에서는 그 해 6월 자동차엔진공장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동맹파업과 함께 가두 시위에 들어갔다. 치안 부대의 발포로 시위가 폭동화하면서 교도소·경찰서·통일노동자당 지부·외국방송 방해전파 발신소에 대한 습격이 이어졌다. 당국의 공식 발표로만도 사망자 53명을 낳은 이 폭동은 때마침 포즈난에서 열리고 있던 국제견본시 덕분에 외국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었다. 시민들의 반소 감정이 높아지면서 그 해 10월 당지도부가 물러나고 고무우카가 제1서기로 취임했다.
고무우카는 부총리 시절인 1949년에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자주 노선에 공감하는 민족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숙청된 뒤 세 해 동안 투옥된 경력이 있어서, 소련 지도부는 폴란드의 이 새 지도자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고무우카는 자신을 친소파로 공언하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충실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소련의 개입을 막아냈다. 그는 소련과의 유대를 강화하면서도 언론과 외국 여행의 부분적 자유화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개혁 드라이브를 펼쳐나갔다. 그러나 그는 1970년 식료품값 폭등에 이은 노동자 폭동 뒤에 실각했고, 이듬해에는 당 중앙위원회에서도 밀려났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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