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41) 감독이 마침내 태극기를 집어 들었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그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5일 신라호텔에서 진군의 나팔(제작발표회)을 울렸다. '쉬리' 이후 4년 만이다. 장동건 원빈 이은주가 선봉장을 맡았고, 최민식 김수로도 작은 임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동참했다. 제작비 130억원, 연인원 2만5,000명, 촬영기간 8개월. 20억원 규모의 평양거리 세트 조성, 시각 감독 도입. 전 국토를 누비는 로케이션. 유례가 없는 대작이다. 그런 만큼 그동안 말도 많았다. "크기에만 욕심을 낸다" "진부한 얘기 아니냐" "지금이 어느 때인데 반공영화냐" 등등. 그런 소문에 귀 막고 묵묵히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준비를 마친 강제규 감독과 그를 믿고 기다려온 배우들. 가야 할 고지가 어디이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기에 그들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50년 전 한국전쟁의 포화 속을 달리려는 걸까./이대현기자 leedh@hk.co.kr
● 강제규 감독
"처음에는 전쟁 그 자체보다 전쟁 속의 한 상황을 다룰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TV에서 본 한미 합동 유해발굴 작업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내 뒤통수를 쳤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 속에 이렇게 뜨거운 감동과 슬픔이 있는데, 어설프게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다. 다큐적 상황 속에서 전쟁의 뿌리를 찾기로 했다."
그 뿌리란 무엇일까. "소영웅주의도, 애국주의도, 시각적 잔인성을 강조하는 극사실주의도 아니다. 전쟁에 내던져진 인간들의 사랑과 이별, 형제애, 감동을 극대화한다. 이전 영화들이 국가적 이념이나 군인 중심으로 접근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철저히 개인적 이념으로 접근하려 한다."
그 가능성을 강 감독은 한국전쟁의 차별성에서 찾는다. "한국전쟁은 목적이 모호한 동족간의 내전이었다. 때문에 비극성도 깊고 크다. 등장 인물들과 얽힌 그 비극성을 통해 한국전쟁의 총체적 성격을 드러낼 수 있다. 승자 없는 전쟁이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모두 패자일 뿐이다. 우리의 불행은 그 체험을 어떤 이유에서건 지혜롭게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한 데 있다."
그러고 보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분명 반전영화다. '쉬리'가 남긴 '짐'을 이 한 편의 영화로 멋지게 벗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강제규 감독. "한국영화에도, 나 자신에게도 '태극기 휘날리며'는 세계시장이란 또 다른 가능성의 확인이자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 그 결과는 영화가 완성되는 내년 설 연휴 때 쯤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장동건
종로에서 구두닦이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다가 징집된 진태 역. 유일한 소원은 함께 전쟁터에 끌려 나온 동생 진석을 살려서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저예산영화 '해안선'을 끝내자마자 시나리오도 안 보고 뛰어 들었다. "큰 스케일 속에서도 인물들의 갈등구조나 성격이 잘 살아 있어서"라고 했다. 물론 감독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아시아권에서 그의 지명도를 감안한 캐스팅임을 강제규 감독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는 감독으로서 지금까지의 그를 해체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고 했다. 이를 아는 듯 장동건도 몇 달 동안 몸과 마음 다듬기를 해왔다. "가장 힘들고 가장 공 들여야 하는 작품을 만난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나도 달라질 것이다."
● 원빈
형과 함께 전장에 끌려온 진석 역. 순수하고 맑은 정신의 고교생이 간장독에 빠진 것처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절여지고 변색된다. 그 변화를 눈빛과 표정으로 보여야 하기에 영화 경험이라고는 '킬러들의 수다'가 고작인 그로서는 만만치 않다. "막연히 전쟁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한 가족의 이별과 죽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전쟁의 참혹성을 실감하고 있다. 극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공부와 액션을 위한 체력훈련도 열심히 했다."
● 이은주
혼자 어린 세 동생을 돌보는 진태의 약혼녀 영신 역. 멜로적 요소를 위해 처음보다 비중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비교적 작은 역할이다. 그런데도 출연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 큰 영화, 온 몸을 바쳐 가족과 사랑하는 남자에게 헌신하는 전통적 여성상 때문"이다. "사진으로 표정과 행동을 연구하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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