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피우는 두 불꽃첫째는 봄의 진달래다. 가파른 산록이 온통 붉게 물든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색이 짙어진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 전체에 시뻘건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듯하다.
둘째는 가을의 억새. 이번엔 붉은 불꽃이 아니라 가녀린 하얀 불꽃이다. 잡목 하나 없는 산 정상의 넓은 평원이 억새로 가득 찬다. 이 두 불꽃 덕분에 화왕산은 당당히 '명산'의 반열에 올랐다.
산의 겉모습은 무척 위압적이다. 높지는 않아도 밋밋한 평원 위에 우뚝 솟아있고, 주능선이 온통 바위여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오르기 그리 어려운 산은 아니다. 힘든 구간이 더러 있지만 2시간 정도 땀을 흘리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을 잘 타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싱겁다. 그래서 산꾼들은 화왕산 바로 옆의 관룡산(740m)을 연계해 두 개의 봉우리를 한꺼번에 오르내린다. 5∼6시간 정도 걸린다.
화왕산에서 시작해 관룡산을 거쳐 내려오는 방법과 반대의 길을 택하는 방법이 있다. 창녕읍에서 관룡산 등산로 입구인 옥천매표소까지 왕복하는 버스가 하루 6번 밖에 없기 때문에 귀가를 염두에 두고 코스를 잡는 것이 좋다.
화왕산의 입구는 자하골.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1시간 정도로 짧지만 가파르다. 샛길이 하나도 없는 외줄기의 길을 타고 간다. 정상 가까이 다가가면 경사가 약 60도에 이른다. 일명 '환장고개'이다. 네발로 엉금엉금 긴다. 아주 위험한 지역에는 계단과 로프를 설치해 놓았다. 환장고개를 지나면 바로 정상. 지금까지의 길이 폭풍 속의 바다였다면 정상의 모습은 잔잔한 호수 같다. 약 6만평의 분지가 펼쳐져 있다. 돌 능선 위에 펼쳐진 넓고 평평한 땅. 묘한 느낌을 준다. 분화구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이런 모습이 되었으리라. 그 분지는 온통 버석거리는 억새로 가득하다. 이미 억새꽃잎은 모두 바람에 날아가고 앙상한 꽃대만 바람에 흔들거린다.
사람이 지피는 큰 불꽃
진달래의 불길이 일기 전에 사람들은 또 하나의 불꽃을 피울 것이다. 창녕군청과 이 곳의 배바우산악회가 마련하는 '정월대보름 억새태우기' 행사다. '불의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산에 불이 나야만 풍년이 들고 평화롭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1995년부터 시작돼 매년 열렸는데 2000년 행사 이후부터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3년에 한번씩만 하기로 했다. 올해가 바로 3년이 되는 해이다. 정월대보름인 15일 오후 6시30분에 그 불길을 볼 수 있다.
억새태우기는 장관을 연출한다. 겨우내 바짝 마른 억새는 마치 휘발성 강한 화석연료처럼 잘 탄다. 너른 들판을 모두 태우고 까만 재만을 남기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불길이 이는 것이 아니라 화염이 폭발하는 것 같다. 흥분한 불꽃은 허리를 자르고 머리채를 흔들며 하늘로 오르기도 한다. 먼 옛날 '화산' 화왕산의 모습이 그랬을 것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 주변 볼거리
여행지로 그다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창녕은 그러나 '경남의 경주'라고 불릴 정도로 유적이 많다. 덜렁 산만 탈 것이 아니라 주변을 샅샅이 훑으면 머리도 살찌우는 여행이 될 것이다.
산 정상에 큰 유적이 있다. 화왕산성이다. 처음 축성한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인 1595년 다시 쌓았고 홍의장군 곽재우가 이 성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했다.
성 안의 넓이가 5만 6,000평이나 되고 성벽이 높은 곳은 4m에 이른다. 산성 중앙에 연못(일명 용지)이 있고 그 주위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다. 창녕 조씨가 이 곳에서 성을 얻었다는 '창녕조씨 득성비'도 있다.
화왕산과 관룡산의 대표적인 절은 관룡사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나 창건연도가 확실하지 않다. 원효대사가 제자 1,000여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물 제146호인 약사전 등 절 건물이 운치가 있다.
창녕에는 두 곳의 고분군이 있다. 송현동 고분군과 교동 고분군으로 모두 가야시대의 것이다. 고분은 모두 200기에 가깝다. 젖무덤 같이 생긴 크고 작은 무덤이 불규칙적으로 놓인 모습이 이채롭다.
화왕산과 함께 창녕의 가장 큰 명물은 우포늪.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늪지다. 3개면에 걸쳐 있고, 둘레는 7.3㎞, 전체 면적은 70여만평에 이른다. 약 1억 4,000만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한 우포늪은 수생식물의 보고이다. 한때 개발계획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았으나 1997년 국제보호습지로 지정되면서 예전의 생태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철새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겨울이어서 색깔이 황량하지만 다양한 철새를 구경할 수 있다. 창녕군청 문화관광과 (055)530-2236.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경부고속도로를 탔다가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로 길을 바꿔 창녕IC에서 빠지면 된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원주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를 바꿔 타면 대구에 닿을 수 있다. 요즘은 이 길이 정체가 없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창녕행 고속버스가 출발한다. 창녕시외버스터미널 지척에 화왕산 입구가 있다.
쉴곳
인근 부곡온천 지역에 대형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부곡하와이 관광호텔(055-536-6331), 로얄관광호텔(536-6661), 레이크힐스호텔(536-5181), 파크관광호텔(536-6311), 가든관광호텔(536-5771) 등이 관광호텔급 숙박시설이다. 일성부곡콘도(536-9870)는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적당하다. 그 밖에 현대호텔(536-5131), 원탕고온호텔(536-5655) 등 일반호텔과 장급 여관이 많다.
먹거리
창녕 지방에는 지역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먹거리를 찾기 힘들다. 대신 부곡온천 등에 힘입어 여행객의 입맛을 유혹하는 '관광지 음식'을 잘 하는 식당이 더러 있다. 관룡사 입구에 위치한 고향민속가든(055-521-3010)은 쌈밥으로 유명한 집. 직접 재배한 쌈과 경상도 특유의 된장쌈장이 맛있다. 부곡온천 인근의 공원숫불갈비(536-6555)는 창녕에서 이름난 한우구이집. 즉석에서 반죽해 면을 뽑는 냉면도 맛있다. 부곡의 한성호텔이 직영하는 부곡한성가든(536-5131)에서는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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