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비밀지원 사건의 진상규명 작업이 중대 전기를 맞고 있다. 4일 한나라당이 특검 법안을 국회에 전격 제출함으로써 특검이 도입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한나라당은 원내 재적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자민련도 이에 동조하고 있어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특검 법안 처리는 어렵지 않다.그러나 한나라당이 당장 단독 처리라는 강수를 둘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 신주류 일각의 특검제 수용기류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 법안이 상임위 심의에 앞서 국회에 계류되는 15일 동안 대여 압박과 설득으로 민주당에서 이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여야 합의를 끌어낸다는 게 한나라당의 1차 목표다.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총장은 이날 "고도의 정치적 사안인 이번 사건은 특검이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며 특검 수용 가능성을 비쳤다. 신주류의 조순형(趙舜衡) 김경재(金景梓) 의원 등도 "특검을 도입하면 수사의 범위를 한정할 수 있고, 검찰이 수사를 맡았을 경우 예상되는 야당의 정치공세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5일부터 시작되는 총무 절충에서 민주당이 끝내 반대하면 특검 법안을 단독 처리할 방침이다. 사실 사건 당사자들의 고백을 우선하는 한화갑(韓和甲) 대표 등 민주당 구주류의 저항은 여전히 거세다. 그렇다 해도 막상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면 민주당도 여론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결국은 따라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여야가 특검 실시에 합의한다 해도 실제 특검 수사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법사위 심의 과정서 여야의 줄다리기가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제출한 특검 법안은 수사기간 90일에, 수사범위를 '현대상선 2억 달러 송금 사건과 이와 관련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2억 달러 외에도 현대전자의 영국공장 매각자금 1억 달러, 현대건설 1억5,000만 달러 등 다른 대북 지원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하자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특검을 한다 해도 이번 사건에 수사범위를 국한하자는 입장을 취할 게 확실하다.
한나라당은 이런 와중에 특검이 무력화할 가능성도 내심 우려하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는 "여권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 청와대의 핵심 관련자들을 해외로 도피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한 고발 방침도 이들의 출국금지를 위한 압박 수단이다.
국회가 특검 법안을 통과시킨다 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상정해볼 수 있다. 이때 법안의 재의결을 위해서는 재적과반수 출석과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도 입법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물론 노 당선자측의 요구대로 사건 당사자들이 국회에 나와 적극적 해명을 한다면 여론 추이에 따라 특검 대신 정치적 해결이 모색될 수 있다. 여론과 정치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노 당선자가 취임 후 검찰총장에게 전격적으로 수사를 지시할 수도 있어 이번 사건의 최종 해법이 특검 이외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 특검 법안 요지
수사대상=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대출한 산업자금이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관련 대북 뒷거래에 사용된 의혹 사건과 2000년 5월 현대건설이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 1억5,000만 달러를 송금하는 등 정상회담 전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 주도로 각 계열사 별로 모금한 5억5,000만 달러의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2000년 7∼10월 현대전자 영국 스코틀랜드 반도체공장 매각대금 등 1억5,000만 달러의 대북 송금 의혹 사건 및 이와 관련된 사건.
수사기간=특별검사는 임명된 날로부터 10일 동안 수사에 필요한 시설의 확보, 특검보의 임명요청 등 직무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이 준비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90일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 그러나 특검이 이 기간 내에 수사를 완료하지 못하거나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대통령에게 그 사유를 보고하고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수사기간을 1차로 60일, 2차로 30일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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