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민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55년만에 처음으로 수매가 인하를 단행한 것은 2004년 쌀 개방 재협상과 현재 진행중인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을 앞두고 가중되는 압력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쌀 시장 개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 쌀 농가에게 '쌀 산업도 이제 정부 보호막 아래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우선 정부는 대외적 선언을 통해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쌀 재협상에서 최대 당면 과제인 쌀 관세화 유예를 관철할 토대를 마련 하겠다는 의도다. 무작정 쌀 관세화 유예를 주장하기 보다는 자구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세계 여론의 지원을 받겠다는 것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당시에도 농산물 수출국들은 효과적인 쌀 생산제한조치 등을 조건으로 쌀 관세화 유예를 인정한 바 있다.
또한 수매가 인하는 국내 쌀 생산 농가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장기적 포석의 일환이다. 현재 국내 시중 쌀 가격은 수입 쌀에 비해 무려 4∼5배 이상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화 유예가 관철되지 못해 쌀시장의 문호가 열릴 경우 국내 쌀 농가의 몰락은 불보듯 뻔하다. 따라서 쌀 생산 감축을 유도해 영세 농가는 도태 시키고, 개방화 시대에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농가만을 선택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농림부가 수매가 인하 대안으로 내놓은 논농업 직불제 지불 방법을 단가 인상 대신 지급 상한선을 올리는 쪽으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매가 인하는 쌀 생산 감축을 유도, 정부 재정 부담도 상당 부분 덜어줄 전망이다. 농림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쌀 재고는 세계식량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600만석) 2배인 1,190만석에 달한다. 이런 과잉 쌀 재고량을 보관·관리하는 비용만도 연간 5,400억원이 소요된다.
그러나 농민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정부의 수매가 인하 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간 정부의 추곡 수매 안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치적인 고려가 가미돼 정부 안보다 인상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도 "국회에서 다른 수정 안을 내면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혀 절충 여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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