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시를 휘감고 있는 화두(話頭)는 단연 전쟁과 경기다.북핵, 이라크전쟁 가능성, 반도체 값 하락, 내수소비 위축, 달러 약세, 유가 상승, 기업 실적 악화, 신정부 경제정책의 불투명성… 이런 단어들이 연일 증권 객장을 오르내린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주가하락의 원인을 지정학적 리스크(위험)로 돌리고 전쟁불사를 강조하는 미국 부시대통령을 원망한다.
하지만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의 4분기 실적이 나오면서 '전쟁 위기가 해소되면 주가가 회복될 것'이라는 시장의 컨센서스(의견일치)가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연일 발표되는 주요 기업들의 경영 성적표가 이 같은 회의를 부추기고 있다.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는 작년 한해 '사상최대 실적'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싶겠지만, 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4분기 실적의 추세적 변화다.
삼성전자 SK텔레콤 POSCO KT 삼성SDI LG화학 등 주요 기업의 4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3분기보다 30∼80%나 감소했다. 4일 실적을 내놓은 삼성전기는 4분기 매출이 8,078억원, 영업이익 77억원으로 매출은 3분기에 비해 2%, 영업이익은 82.1% 감소했다. 5일 실적을 공개하는 LG전자는 4분기 영업이익이 500억∼880억원으로 3분기 보다 53.7%에서 최대 73.7% 가량 급감할 것으로 추정됐다.
주요 기업들의 4분기 실적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치와 크게 달라진 점도 실망을 더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분석결과, 주요 기업의 4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당초 기대치보다 많게는 70%나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의 실적전망을 잘못 분석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연말에 순익에 영향을 미치는 성과급이나 판매관리비 등 비용요인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데 따른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최근의 주가하락이 전쟁리스크 만이 아닌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의 약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메리츠증권 조익재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한국 기업의 이익 성장세가 드디어 횡보 내지는 정점을 지난 것 같다"며 "성장 전망이 낮춰지고 있는 만큼 막연히 저평가 논리를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LG투자증권 박윤수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상반기 나타난 갑작스런 기업 이익 증가는 기업들이 장사를 잘 해서 나온 매출액의 증가 때문이 아니라 재무구조개선에 따른 이자비용 감소와 환차익 등 비정상적인 이익에서 나온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20년간의 호황을 마무리하고 구조적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만큼 앞으로는 기업들이 물건을 팔아먹기(매출성장)가 더 힘들어지고 실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분배 목소리는 더 커지는 딜레마가 생긴다"고 말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앞으로 자신이 투자하려는 기업의 매출증가 여부를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기업의 기본적인 영업활동에서 나오는 매출은 안 늘어났는데 순이익이 200%로 증가했다는 것은 일회성 비정상적인 실적 개선인 만큼 경계해야 한다.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얼마인지 따지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신규 사업에 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매출처를 만들어내는 기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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