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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39·끝)연재를 마치며―동양신화의 의의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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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39·끝)연재를 마치며―동양신화의 의의와 가치

입력
2003.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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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가 이번을 끝으로 연재를 마친다. 그 동안 우리는 동양의 신화를 주제별로 세분해 읽어 왔지만 마지막 회에서는 다양한 내용을 종합해 전체 신화를 정리하고 그 의의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세계 각 민족은 각자 고유의 신화를 갖고 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단일한 민족 구성체가 아니므로 이 때의 중국은 민족 개념이 아닌 국가 혹은 지역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우리가 중국 신화를 말한다면 그것은 한국 신화나 일본 신화처럼 단일한 민족 신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광활한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의 신화 전체를 뜻한다. 중국 대륙에는 오늘날 중심 민족인 한족(漢族)은 물론이고 만주족 몽고족 위글족 회족(回族) 장족(藏族) 묘족(苗族) 등 55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 신화란 한족을 비롯한 온갖 민족 전체의 신화를 아울러 말한다. 범위를 좁혀서 말한다면 중국 총인구의 93%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 사이에 구전되거나 문헌상으로 전해져 온 신화만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한족신화도 고대부터 다양한 주변 민족 신화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어서 단일 민족신화의 개념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상고시대의 중국 문명은 한족 중심의 통일된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문명이 대등하게 공존한 형태였다. 근래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따르면 중국문명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것처럼 황하(黃河) 유역에서 변방으로 파급된 게 아니라 요녕(遼寧)이나 장강(長江) 유역 등 변방의 여러 지역에서도 일찍이 발달한 문명이 있어서 다원적으로 여러 문명이 결합한 형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런 상고문명을 반영하는 중국신화도 결코 어느 중심민족의 신화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 및 주변민족 신화의 총체로서 파악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 전해져 오는 중국신화는 중국만의 신화가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신화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 연재에서 중국신화를 주로 다루면서 왜 동양신화라고 했는지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동양신화를 대표하는 중국신화는 한 가지 계통의 신화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다양한 계통의 중국신화는 크게 지역 및 종족, 그리고 신화 내용에 따라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지역 및 종족에 의하면 중국신화는 동방 동이계(東夷系) 신화와 서방 화하계(華夏系) 신화, 남방 묘만계(苗蠻系) 신화의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동방 동이계 신화는 황하 하류 및 산동반도, 요동반도 등 발해만 일대와 동부 해안지대에 거주하던 동이계 종족 계통의 신화이다. 북방신화도 대체로 이에 포괄된다. 제준(帝俊), 예( )신화 등이 대표적 예이다. 한국 신화도 이 신화 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음으로 서방 화하계 신화는 황하 중상류 지역으로 후대의 이른바 중원 지역에 거주했던 한족의 선조인 화하계 종족계통의 신화이다. 황제(黃帝) 신화가 대표적 예이다. 바로 이 화하계 신화를 근원으로 주(周)·한(漢) 왕조로 이어지는 중국문명의 정통 계보가 형성된다. 끝으로 남방 묘만계 신화는 양자강 이남에 거주했던 묘만계 종족 계통의 신화이다. 신농(神農), 치우(蚩尤), 축융(祝融) 신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묘만계 신화는 실상 동이계 종족이 남방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것이어서 크게 보면 동이계 신화와 계통상 별 차이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신농과 치우가 활동했던 판천(阪泉)이나 탁록( ) 같은 지역은 산동 일대에 있었으며 묘족도 원래는 동방에서 살다가 남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방의 시가(詩歌)인 초사(楚辭)에 등장하는 신의 대다수가 동이계에 속하는 신인 것도 묘만계 신화가 동이계 신화와 같은 계통임을 알려준다.

이들 세 가지 계통 중 동방 동이계 신화가 내용적으로 가장 풍부하며 남방 묘만계 신화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아주 넓게는 중국신화를 동이계 신화와 화하계 신화의 대립구조로 파악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이계 신화는 주(周) 나라에 의해 은(殷) 나라가 망한 후 억압·왜곡돼 주변과 민간에 잠복하게 된다. 왜냐하면 주 문화는 화하계 신화의 정신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제도와 합리성을 중시하고 신비주의를 멀리하는 주 문화의 정신은 후일 중국의 정통 이데올로기가 되는 유교를 낳았고, 신비주의를 숭상하고 인간중심의 사고를 배격하는 동이계 신화의 정신은 후일 중국의 제도권 문화는 되지 못했지만 무속, 도교 등으로 성립돼 주변문화 및 기층문화의 핵심 내용이 됐다. 결국 화하계 신화와 동이계 신화의 대립은 후일 유교와 도교라는 대립적 문화를 성립시켜 중국문화 나아가 동양문화를 상호보완적으로 발전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유교가 중심주의적이라면 도교는 주변의 가치를 옹호하며, 유교가 현실주의적이라면 도교는 낭만주의적이고, 유교가 가부장적이라면 도교는 친 여성적이며, 유교가 인간 중심적이라면 도교는 자연 친화적이고, 유교가 이성적이라면 도교는 감성적이며, 유교가 논리와 사변을 중시한다면 도교는 상상력과 이미지에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양자는 마치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양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공존해왔다.

국신화의 두 번째 분류 방식은 일반 신화학에서처럼 신화 내용에 따라 창조신화, 영웅신화, 자연신화 등의 비교적 큰 주제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먼저 창조신화란 우주, 인류의 발생 및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이다. 반고(盤古)의 세계 창조 신화, 복희(伏犧)·여와( )의 인류 창조 신화 등이 대표적 예이다. 영웅신화는 반신반인적, 초인적 존재의 모험, 탐색, 건국의 과정을 다룬 신화이다. 예( )가 아홉 개의 태양을 제거하고 괴물을 퇴치했던 신화, 황제가 치우를 제압했던 신화, 우(禹)가 홍수를 다스렸던 신화 등이 대표적 예이다. 자연신화는 태양, 달, 비, 바람, 조수, 초목 등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와 숭배를 담은 신화이다. 태양신 희화(羲和) 신화, 달의 신 항아(姮娥) 신화, 강의 신 하백(河伯) 신화 등이 대표적 예이다. 물론 이밖에도 이들 세가지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신화도 많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중국신화의 내용을 정리해 보는 일과 관련해 꼭 언급해야 할 것은 중국신화가 과연 어떤 문헌에 담겨 있느냐이다. 신화를 읽을 때 우리는 해설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지만 가급적 원전 자료를 번역서로라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가령 우리는 그리스어를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핀치의 영어판 그리스 로마 신화집의 번역서 혹은 그것을 다시 각색한 책을 통해 접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골수 청교도인 벌핀치의 편집에 의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상당 부분 왜곡되었다는 게 정평이다. 중국신화는 고전 문헌에 많이 흩어져서 전해져 내려오지만 꼭 읽어두어야 할 두 권의 원전이 있다면 그것은 '산해경(山海經)'과 '초사(楚辭)'이다. 이 두 책에 대한 소개는 지난 회에서 이미 했고 국내에 번역본도 나와 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지난 세기 우리는 인간이 이룩해 온 일, 역사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20세기의 대표적 화두였다. 그러나 탈근대를 말하는 오늘날은 인간 역사 이전의 이야기인 신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기술화, 합리화해 메마른 우리의 심성에 신화가 따뜻한 생명력과 활력을 불어 넣기 때문이다. 신화는 아득한 시절 인류 공통 경험의 표현이므로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보편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성을 지닌다는 말이 모든 신화가 다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화의 본질적 의미는 같을지라도 그것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마치 모든 민족에게 식욕은 동일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양식 중식 일식 한식 등으로 달라지듯. 따라서 신화학의 세계에서는 어떤 신화가 특별히 가치가 있고 어떤 신화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구별은 있을 수 없다. 세계의 모든 신화는 평등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서구문화를 중심으로 사유하고 생활하는 방식에 젖어 있었다. 신화도 특정한 지역의 신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가 표준처럼 받아들여지고 동양신화는 오히려 낯선 실정이다. 최근 신화 뿐만 아니라 요정, 마술 이야기 등 환상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 현상은 그 동안 이성에 의해 억압된 상상력의 해방이란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상상력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있다. 특정한 지역의 신화는 그 지역의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는 특정한 지역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 신화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 세계를 특정한 지역의 신화나 마술 이야기로만 채울 때 우리는 뿌리부터 특정한 문화에 동화돼 그 문화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른들보다 어린 세대에게 이는 더욱 두려운 일이다. 우리는 서구문화 반대편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동양문화의 원천인 중국신화를 잘 알아야 상상력을 편식하지 않고 세계 문화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중국신화의 다양한 지역적, 종족적 특성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보다 호혜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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