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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정치인

입력
2003.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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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은 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 마스크를 한 노상강도가 갑자기 뛰어나와 잘 차려입고 길을 가는 신사를 막고 총을 들이댔다. "돈 내놔" 라고 위협했다. 부유하게 보이는 그 사람은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국회의원이다." 이에 강도는 "그럼 잘 됐다. 내 돈 내놔."라고 말을 돌렸다. 잘 알려진 '정치인과 강도'라는 제목의 유머다.■ 일본에서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는 점쟁이보다 낮다. 아사히신문이 얼마 전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정치인을 신용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2%에 불과했고, '어느 정도 신용한다'는 13%로, 둘을 합쳐도 정치인의 신용도는 15%에 그쳐 역대 최저였다. 1984년 조사에서는 40%였지만 1998년에는 19%로 떨어지는 등 매년 하락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점쟁이에 대한 신용도는 20%였으며, 가장 믿는다는 직종·분야는 일기예보로 92%였다.

■ 독일에서는 경찰 군 사법부 세무를 뺀 나머지 분야 종사자를 공무원에서 제외하자는 보고서가 나왔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공직개혁위원회가 만든 것이다. 위원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독일 관료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필수 기능만 공직으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무원들의 연공서열제도를 없애고 공무원 노조와 정부가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제도를 민간기업 수준으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에 대한 불신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각종 조사에서 이들에 대한 신뢰도는 최하위권이다.

■ 요즈음 현대상선 대북 비밀지원 사건을 보고 있는 국민들은 그저 말 문이 막힐 따름이다. '통치권 차원' '국익'이란 어려운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이 선택했든 안했든 간에, '국민의 정부'가 어떻게 그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는가에 대한 탄식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정치적 해결'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무엇인가. 정치인의 세치 혀에 놀아난 민초들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치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고작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새 정부는 어떨는지.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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