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국제정치 연구로 퓰리처 상을 받은 미국 학자 다니엘 여진의 저서 '전리품'(戰利品·The Prize)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부시 현 대통령 부자가 1956년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있다. 텍사스의 해외유전개발회사를 운영하던 부시 전 대통령이 아들을 데리고 새 유전 시추식에 참석한 모습이다. 부자가 모두 한때 석유회사를 운영했고 텍사스 석유자본을 발판으로 대통령이 돼서는 석유 이권 다툼이 본질인 이라크와의 전쟁을 이끌게 된 기연(奇緣)이 우연치 않은 것임을 일러주는 듯 하다.1956년은 중동 석유를 둘러싼 국제 역학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수에즈 운하 사태가 발발한 해다. 아랍 민족주의를 주도한 이집트의 나세르가 19세기 이래 영국이 지배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무력 탈환에 나선 사태다. 수에즈 운하는 대영제국 영광의 상징이자 유럽으로 가는 중동산 석유의 3분의 2가 지나는 생명선이었다.
그러나 수에즈 침공은 미국의 배신으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전쟁으로 중동 석유가 끊기면 무력 개입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한 미국은 오히려 침략행위를 비난하며 철군을 요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의 운하 봉쇄와 사우디 등의 석유 엠바고로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맥없이 물러섰다. 미국은 아랍권의 민족주의를 자극해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속셈은 서유럽의 기득권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대체하려는 것이었고, 수에즈 사태는 결국 미국이 중동 질서의 주도권을 차지한 계기이자 대영제국의 묘비명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수에즈 사태 이전, 트루만 대통령은 최대 가상적국 소련이 사우디 유전을 장악할 위험이 있으면 유전을 폭격해 초토화한다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이후 사우디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을 우호 세력으로 묶어 두고 안정된 석유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중동전략의 기초였다. 우호적인 독재 왕조를 지원하고, 이란처럼 적대 세력이 장악한 나라는 봉쇄하는데 주력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를 무력화시켜 봉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 세기동안 우여곡절속에서도 유지된 이 중동 전략은 그러나 지금의 부시 행정부에서 근본적으로 수정됐다. 2001년 체니 부통령이 작성한 '국가 에너지정책 보고서'는 석유 자원 자체의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미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유전을 점령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이라크 점령이다. 이를 통해 사우디의 변화에 대비하면서, 그 유가 결정력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중동 경략 방책은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은 영국 등 전통의 우방을 이끌고 이라크를 장악할 준비를 갖췄다.
2월20일 회교 성지순례 기간이 끝난 직후, 공습과 동시에 수도 바그다드와 유전 지역을 전격 장악한다는 전쟁 계획이 이미 유포되고 있다. 후세인은 빈 라덴처럼 사막으로 잠적할 처지이고, 이라크는 침공군 사령관의 군정 치하에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은 이어 친미 괴뢰정권을 세우기 위해 지난해 말 런던에서 잡다한 반 후세인 망명 세력들을 모아 지침까지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반세기 전 아랍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척 하던 미국이 21세기에 유럽의 낡은 제국주의를 답습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바탕은 부시 대통령이 어릴 적부터 석유의 가치를 배운 것이기보다, 미국의 중동 석유 의존도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장악을 통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조절하고, 장기적으로 중동 석유에 목을 매달게 될 중국을 전략적으로 견제하는 원대한 포석까지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 여론을 거스르는 전쟁을 감행하는 데는 그만한 값진 전리품이 있는 것이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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