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왼쪽 위)가 온통 '댈러웨이부인' 집필에만 빠져 있던 1923년의 어느 날. 그리고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즐겨 읽는 부인 로라(줄리안 무어·오른쪽 위)가 남편의 생일 파티를 위해 케이크를 굽던 1953년 어느 날. 2001년 미국 뉴욕. 파티를 열기를 좋아해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라리스(메릴 스트립·아래)가 건물에서 그대로 툭 하고 떨어져 버린 옛 애인의 자살을 목격한 2001년 어느날.'디 아워스'(The Hours)는 자살은 어떤 발작적인 인생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의식의 흐름이 그곳에 가서 멈추게 되면 일어나는 '인생의 한 단계'라고 풀이하고 있다.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가 살고 있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 1950년대 미국 중산층의 가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LA 로라의 집, 에이즈 말기 환자인 리처드(애드 헤리스)가 살고 있는 2001년 뉴욕이란 세 시대, 세 곳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지만 세 사람을 관통하는 물질적인 '인연'은 결말 부분의 한 가지 설정을 제외하고는, 없다. 영화는 대신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처럼 매우 불규칙한 파동을 통해 세 사람의 삶 속에 '죽음'이 어떻게 개입하게 됐는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울프, 로라, 클라리스, 그리고 그의 옛 애인인 리처드까지 모두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로 '성적' 정체성에 압박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울프가 약속보다 일찍 온 언니의 방문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 것은 억제할 수 없는 언니에 대한 사랑 때문. 조카가 보는 앞에서 언니에게 키스를 하지만, 더욱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만삭의 로라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순간부터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이웃집 키티에게 키스를 한 로라는 주머니에 약을 가득 채우고 모텔로 향한다. 주머니에 조약돌을 가득 넣고 물 속에 빠졌던 것처럼.
그러나 인생이 사건의 연속이 아니듯, 자살도 사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성적 정체성에 고통 받는 여성들의 불안한 내면심리를 부검을 하듯 꼼꼼히 파고 들면서 죽음에 대한 유혹이나, 그것을 이겨내고 또 다른 생을 살아가는 것이나, 그저 '인생'의 한 흐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가 현대 미국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다면, ' 디 아워스'는 근·현대 여성의 삶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기술(記述)한 것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1999년 포크너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을 '풀몬티'의 영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가 노련한 기법으로 영화로 만들었다. 여기에 스타들의 호연이 합쳐져 올해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3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의 수상도 유력해졌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호평이나 수상 여부와 관객이 얼마나 영화를 즐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 'Hours(세월)가 아니라 Dours(꿀꿀함)'라는 미국 관객들의 평처럼 '즐기는' 영화가 되기엔 무겁고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14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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