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 큐레이터요? 그게 뭡니까?" 한 전직 대통령이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보는 자리에 동석했던 미술인이 "각하, 큐레이터를 양성해야 합니다"라고 건의하자 대통령은 이렇게 되물었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가 갑작스러운 반문에 당황한 이 미술인은 엉겁결에 "미술 전문가를 말합니다"라고 답하고는 더 이상 말을 못했다고 한다. 서양화가 김형대(67)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전하는 미술 동네 일화의 하나다.40여년 동안 전위적 현대미술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7일부터 3월9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회고전을 연다. 회고전을 위해 만든 화집에 실린 그림들만큼이나 달변인 그가 풀어 놓는 미술계 이야기는 다채롭고 흥미로웠다.
"'샛강'의 이미지야말로 내 그림의 뿌리입니다. 영등포에서 자라면서 여의도 백사장에서 미역 감고 강물과 대화하던 기억, 포목 장사를 하던 어머니의 가게에서 본 비단의 빛과 결을 표현한 게 바로 내 그림이지요." 1961년 국전 특선작 '환원 B'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생성' '승화' '심상' 연작으로 이어진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하고도 율동적인 붓질의 자취는 바로 샛강의 이미지다. "중학교 1학년 때 전쟁이 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등포에서 강을 건너가려면 기차 타고 용산을 거쳐 갔지요. 격납고가 있던 여의도의 샛강은 지금은 강변도로와 올림픽대로 사이에 낀 보잘것없는 물줄기지만 당시에는 강변의 거대한 바위 밑을 굽이도는 검푸른 물살 때문에 물귀신 전설까지 있던 곳이었지요."
이후 80년대부터 계속한 '후광' 시리즈에서 그는 어머니의 가게에서 보았던 한복의 색, 혹은 창호지를 통하거나 발이 쳐진 한옥의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실루엣을 표현했다. "막상 작품활동 하고 20년 넘게 지나니까 그 빛깔, 색이 나오더군요. 요즘은 회화라는 것이 나이 60은 넘어야 제대로 표현이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의 그림은 음악으로 치면 양악이 아닌 국악이다. 단색조의 화면에 은은한 빛의 자취와 율동이 담겨있다. 형식은 서양 추상화지만 김씨의 화면에 담긴 빛은 은은하고 고색창연한 한국적 빛의 흔적이다.
그는 지난해 이화여대 교수직을 정년 퇴임했다. 화단의 이런저런 파벌이나 계보에서 비켜선 채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돼 독자적 추상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요즘은 어두운 색을 바탕에 깔고 차례로 밝은 색채를 덧씌워 평면화이면서도 입체성을 강화한 작품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고전에는 1961년부터 올해까지의 작품들 가운데 60년대 미공개작 20여 점을 포함해 70여 점의 작품을 내 놓는다. (02)720―1020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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