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일본의 나아갈 바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도요타를 바라보게 하라." 장기불황 속에 도산이 속출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의 승승장구가 돋보이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을 지키는 도요타의 성공에 기업은 물론이고 행정, 교육 등 일본의 모든 부문에서 '도요타 따라 배우기'가 일어나고 있다.도요타의 질주
세계 3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는 지난해 3월 결산 기준으로 일본 기업 사상 최초로 경상이익 1조 엔 돌파를 달성했다. 이에 앞서 9월 중간결산에서도 사상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수익에서 5분의 4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의 호조에 힘입은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도요타는 미국 승용차 시장에서 77만4,953대를 팔아 68만2,658대를 판매한 GM을 누르고 2위로 올라섰다. 미 시장조사기관 JD파워는 이런 추세라면 도요타가 올해 1·4분기에는 1위인 포드(작년 11월말 현재 80만1,607대)를 제치고 미국 시장 최대 메이커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12월 말 도산 상태인 대형 종합상사 도멘의 경영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산하 회사로 흡수하는 등 타 업종 기업의 재건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다. 부실채권에 따른 자기자본율 감소로 증자를 서두르고 있는 대형 은행들도 추가 발행 주식을 대량 인수해줄 곳은 도요타밖에 없어 도요타의 의중만 살피는 실정이다.
도요타를 배워라
방위청은 지난해부터 도요타에 직원들을 파견해 도요타 특유의 자재 도입·재고 관리 방식을 배우고 있다.
우편사업 민영화를 위해 4월 발족하는 우정공사는 도요타의 다카하시 도시히로(高本俊裕) 전 상무를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도요타의 효율적인 경영기법을 도입할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등에서 지도 요청이 밀려드는 바람에 도요타는 아예 지난해부터 채용 정보 회사인 리쿠르트와 공동으로 생산관리방식을 전수하는 컨설팅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8일 중학교와 고교 과정을 통합한 중·고일관교(一貫校)를 설립해 교육개혁 모델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도요타 노조도 기본급 인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발표해 올해 춘투(春鬪)는 일찌감치 임금동결 기조가 굳어가고 있다.
오쿠다 비전
지난해 5월 일본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게이단렌) 회장에 취임한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 회장은 경제재정자문회의 등 각종 정부 자문기구에 참여하며 일본의 경제개혁 시나리오 작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게이단렌은 새해 들어 2025년까지의 경제·사회적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맞춘 국가 장기 정책 제안 '오쿠다 비전'을 발표했다. 오쿠다 비전은 한국·중국·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과 동아시아자유경제권을 창설하고 소비세율을 인상해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며 고령화에 대비해 외국인 이민을 허용하고 전국을 5∼10개 주(州)로 재편성하는 것 등 오쿠다 회장의 지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쿠다 회장은 "개혁을 더 이상 정치인과 관료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며 게이단렌의 정치헌금을 부활시켜 정책 평가로 정치인을 압박하겠다는 복안도 추진 중이다.
본업이 부진해 게이단렌 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는 경영인을 찾기 어려운 형편에서 한동안 일본 경제계의 목소리는 오쿠다 회장이 독점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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