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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재개표까지 커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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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재개표까지 커질 줄 몰랐다"

입력
2003.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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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지난해 16대 대선 직후 인터넷에 개표 조작설을 올려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장본인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초췌한 30대 용의자 정모씨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고 있었다. 1988년 대구의 모 대학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인천과 울산의 특수학교에서 장애 아동들을 가르쳐온 정씨의 범행은 아주 사소하게 시작됐다.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0일 저녁 10시가 넘은 시각. 울산의 모 PC방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던 정씨는 여러 사이트에 떠있는 '이번 선거는 조작이고 개표도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정씨는 '신빙성을 더해보면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즉시 '국정원 중견간부로서 대선음모를 밝힌다'는 내용의 개표조작설을 '조작', 자민련 홈페이지에 띄웠다. A4용지 한 페이지 분량의 글에서 정씨는 '국정원이 63억원을 들여 만든 전자개표기는 기호1번이 연속적으로 10∼12번 나오면 그 중 한번은 기호2번에게 자동 할당시키고 지역별로 2,000∼2,500표씩 자동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아무런 죄책감없이 늘어놓았다. 이 글이 바로 한나라당의 당선무효소송 제기와 재검표 요구로 이어지는 않았으나 '억울한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촉발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처음 도입한 전자개표기의 성능을 무시하고 재검표를 실시하는 국가적인 소동에 정씨의 한 줄 글은 결정적 촉매 역할을 했고 짜깁기로 만든 개표 조작설에 온 나라가 놀아나는 결과로 치달았다.

"전자개표 부정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인터넷 글에 공감해 올린 글이 재개표 파문으로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는 그의 진술은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상의 사소한 글 하나도 자칫하면 사회적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김정곤 사회1부 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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