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개막을 불과 10여시간 앞둔 31일 오후. 한국선수단에 뜻밖의 낭보가 전해졌다. 남북 양측이 다음날 개막식에 공동입장하기로 전격 합의한 것.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별 이슈없이 '조용하게' 치러질 것이라던 이번 대회는 돌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더욱이 매끄럽지 않은 남·북, 북·미관계로 볼 때 공동입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것이어서 각국 선수단과 일본 언론 등은 촉각을 곤두세웠다.일본언론들은 호들갑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합의 이전 요미우리신문이 '(공동입장)안 한다'고 보도하자 아사히신문은 '한다'고 맞받아 치는 등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아사히는 공동입장 합의 이후 대회 취재를 위해 10여명의 기자들을 더 투입키로 결정, 한발 더 치고 나갔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었다. NHK는 이날 저녁 공동입장 합의를 스포츠뉴스 머리기사로 내보내고 자국선수단 입장을 두번째로 돌렸다. 일본기자들이 한국기자들을 상대로 북측 반응 등에 대해 간접취재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들 장면을 뒤로 하고 1일 북남남녀(北男南女)를 기수로 남북이 공동입장했지만 씁쓸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남·북, 북·미관계의 '난제'속에서 이역에 나와 작은 기쁨에 동참하는 데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북측이 왜 공동입장 카드를 먼저 꺼냈는 가에 대한 의구심도 앞섰다. 남북관계라는 특수사안이 대회 흥행에 이용되고 있다는 괜한 불쾌감도 뇌리를 스쳐갔다.
그 한편으로 "벌써 (남북 공동입장이)세번째예요. 작은 통일을 이룬 것 같아요"라고 귀엣말을 건넨 민단 관계자의 표정을 떠올리곤 잠시 희망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 합의도 결국 작은 합의에서 출발한다." 이 문구를 노트북에 메모해놓곤 경기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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