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2일 대북 비밀지원 사건에 대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의향을 보인 것은, 정권인수 과정에서 여야 어느 한쪽에 치중할 수 없는 복합적인 고민의 산물이다. 문희상(文喜相)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를 통해 밝혀진 노 당선자의 구상은 검찰수사 배제와 국회에서 여야 합의에 의한 진실 규명 및 처리방향 결정으로 요약된다.노 당선자가 당초 언급했던 '정치적 고려 없는 공정한 수사'의 원칙에서 정치적 타결로 후퇴한 이유는 우선 남북관계의 붕괴를 우려한 측면이 강하다. 문 내정자가 이날 국익 차원의 선택임을 누차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우려에서 출발한다. 이미 북한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어 노 당선자의 입지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수사가 실익이 없다고 보면서도 노 당선자가 국정조사 등 여야 합의에 의한 진실규명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정부 출범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한 양면 전략이자 고육지책이다. 노 당선자로서는 당장 고건(高建) 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준 절차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현재로서는 노 당선자의 의중이 이번 사건의 확대 재생산을 원치 않는 쪽에 있지만 야당의 요구가 워낙 강력한 만큼, 여야 합의에 의해 실제로 국정조사, 경우에 따라서는 특검수사가 실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노 당선자가 직접 나서지 않고 문 내정자의 발언을 통한 것은 야당의 직접적인 정치공세를 피하면서 향후 협상국면에 대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 내정자가 전면에 나섬으로써 노 당선자는 자신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부담을 줄이면서 여론의 동향을 보고 다음 카드를 준비할 수 있다.
물론 검찰수사 배제와 관련해선 현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노 당선자가 현 정부의 대북 사업을 단죄하는 쪽에 설 경우 신구 정권간의 정치적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단절뿐 아니라 심각한 국론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현실은 노 당선자의 이 같은 정치적 접근방식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게 하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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