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노무현 정부의 장래에 대한 관심은 예상을 뛰어 넘고 있었다. 한국이 일본에서 차지하는 비중 외에도 여러 요인이 중첩된 것 같았다. 일본의 정치시스템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한국 대통령선거의 극적인 장면에다가, 노 당선자의 파란만장한 휴먼스토리가 우선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때마침 불어닥친 북한 핵 문제가 맞물렸다.극심한 정치 불신에다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 지지부진한 구조조정 등에 식상한 일본 국민들은 한국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물결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도쿄(東京) 나고야(名古屋) 교토(京都) 히로시마(廣島) 오키나와(沖繩) 등에서 만난 일본의 한반도문제 전문가와 정치인, 언론인 및 공무원, 그리고 평범한 시민 등 각계각층 인사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기대와 우려로 압축됐다. 그리고 여기에는 부러움과 경계심이 혼재돼 있었다.
기대는 한국이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어떻게 새로 태어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노 당선자가 약속한 개혁을 과연 이행할 수 있을지, 북한 핵 문제 등을 다루는 데 어느 정도 수완을 보일지 등이 관건이다. 게이오(慶應)대학의 한국문제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교수는 "노 당선자는 실용적인 정치가여서, 그의 대북 및 대미 노선은 무척 현실적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핵심 외교자문이기도 한 그는 "고이즈미 총리와 부시 미국대통령이 기질적으로 닮은 게 많아 현안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전제한 뒤, 자신이 받은 느낌으로는 노 당선자와 고이즈미 총리,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성격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고 했다. 원로평론가인 모리다 미노루(森田實)씨는 "일본은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영향을 받아왔다"며 그 예로 4·19학생 혁명이 일본의 학생운동에 미친 파장을 들었다. 그는 한국의 노무현식 개혁이 일본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내다봤다.
우려는 주로 노 당선자의 언행이 불안정하고, 주변 인물들이 아마추어라는 진단에서 출발했다. 시즈오카(靜岡)대학의 한국연구소장인 이즈미 하지메(伊豆見) 교수는 "노 당선자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에 대해 애매한 목소리를 내는 등 자신의 대북정책을 정확히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노 당선자의 정치행태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선을 현장취재하며 서울에서 노 당선자 사설을 써서 보냈다는 아사히(朝日)신문의 후지와라 히데히토(藤原秀人) 논설위원도 일본의 오피니언 리더중에는 노 당선자를 불안하게 여기는 층이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신은 대선 중 노 당선자를 만났을 때 대단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외상의 노 당선자 면담에 배석했던 외무성의 고위관리는 "노 당선자를 만나기 전에는 여러 소리를 들었다"고 말해, 일본 식자층에 노 당선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았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막상 만나고 보니 (노 당선자의) 성실한 태도와 인간적 체취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얘기가 외교적 수사가 아님을 유별나게 강조했다.
부러움은 후보가 직접 TV토론에 나서 정책 대결을 벌이고, 인터넷이 절대적 위력을 발휘하는 등의 모습은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로, 한국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방위연구소의 무로오카 데쓰오(室岡鐵夫)연구실장은 "5년마다 한번씩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한국이 부럽다"고 말했다. 경계심은 한국이 개혁과 변화에 성공하고, 북한 핵 문제를 무리없이 해결할 경우 일본의 위상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폭발적 관심은 계속될 것이며, 일본이 어떤 인상을 받을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병 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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