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현대상선의 2,235억원 대북비밀지원에 대해 남북 협력사업인 만큼, 사법적 심사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우리를 허탈하게 한다. 지난해 9월말 국정감사에서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 송금설이 제기된 지, 4개월이 지나 나온 소리가 고작 이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4,000억원 대북 송금설에 침묵과 포괄적인 부정이 있었을 뿐이다. 정황으로 봐서 김 대통령이 현대상선의 대북지원을 몰랐을 리 없고, 진실을 밝히라는 빗발치는 여론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최고통치자로서의 도덕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받기에 충분하다.감사원이 그나마 서둘러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이 허둥대면서 관련자 출국 금지조치를 취하는 등의 수사태세를 갖춘 것은 임기 중 의혹을 털고 가겠다는 김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노무현 당선자측의 강력한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김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남북관계의 특수 처지는 통치권자인 제게 수많은 어려운 결단을 요구해 왔다"며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위한 관점에서 각별한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북문제에 대한 정책 결정은 일종의 통치행위에 해당되는 만큼, 사법적 재단을 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구시대 유물 중 하나인 통치행위 이론이 지금도 통하는지가 의문일 뿐 아니라, 사안에 접근하는 김 대통령의 인식이 전적으로 잘못됐다는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좀 더 일찍 국민의 이해를 구하거나, 대북 송금설에 대해 막무가내의 부정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노 당선자측의 요구에 밀려 마지못해 엉거주춤한 해명과 사실상의 사과를 할게 아니라, 정말로 민족의 장래를 위한 결단이었다면 정정당당한 결자해지의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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