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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56)상대 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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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56)상대 진학

입력
2003.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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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이 되자 일제는 마지막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한 채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다. 친일 인사들은 경향 각지를 돌며 징병을 독려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학교라고 해서 조용할 리 없었다. 학교측은 3학년 이상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군 간부가 될 수 있는 예비사관학교나 소년비행학교에 들어갈 것을 종용했다. 실제 23회 동기들 가운데 몇 명은 학교측의 회유와 협박에 소년비행학교 등에 지원했다가 전사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4학년이었던 나는 끝까지 버텼다. "사상이 좋지 않다"는 협박까지 받았지만 나는 "좀 더 공부하고 싶다"며 징병을 거부했다. 그러나 일제의 최후 발악도 대단했다. 어린 학생들을 징병할 명분이 없자 궁여지책으로 4학년인 우리들을 5학년과 함께 졸업시켰다. 그 때문에 전주북중 23회는 1945년 3월 5학년 선배들과 함께 졸업을 하고 말았다. 그 해 8월 해방이 됐으니 전주북중 역사상 4년만에 졸업한 것은 우리 기수 뿐이었다.4학년을 마치고 졸업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아버지는 대학 진학을 서두르셨다. 아버지는 단 한 곳, 세브란스 의전을 원하고 계셨다. 이미 두 형님이 그곳을 졸업한 터였다.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서울대 상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 다니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피폐한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러나 집안 분위기나 아버지의 성격 때문에 말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의대에 진학할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공부할 마음도 나지 않았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던 고민의 시간이 지나고 시험일이 다가왔다. 낙방은 당연했다. 온 집안을 통틀어 입시에 실패한 것은 막내 아들인 나 혼자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그것이 더 괴로웠다. 며칠을 고민하다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서울대 상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는 한참을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긴 한숨을 내쉬며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정말 홀가분했다. 3월 학교를 졸업하자 공부에 탄력이 붙었다. 그 때 입시는 요즘과 달리 학교별, 학과별로 시험 내용이 달랐다. 서울대 상대 진학 시험 공부는 세브란스 의전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삼례의 녹음이 짙어가던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됐다. 삼례읍 거리에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목이 터지게 만세를 외쳤다. 모르는 사람과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해방은 내게 또 다른 의미였다.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세브란스 의전을 권유했던 것은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일본인들 때문이었다. 의사가 일본인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이 됨으로써 굳이 의대를 고집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해방 후 좌우의 대립, 상하이 임시정부 인사들과 이승만(李承晩) 박사 세력간의 대립, 친일파 처단 문제 등으로 전국이 시끌시끌한 가운데서도 나는 공부에 전념했고 서울대 상대에 합격했다. 당시 서울대 본교는 동숭동에 있었지만, 상대는 본교에서 멀리 떨어진 제기동 임업시험장 내에 있었다. 상대 교정은 너무 아름다웠다. 임업시험장을 거쳐 들어가는 진입로도 그랬고, 교정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1946년부터 나는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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