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지정을 받으려면 현품을 심의 장소로 가져 오라" "안전 이송을 위한 보안대책부터 세워라"국보 지정이 예고된 삼국유사(三國遺事)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 권1∼5(보물 419-5호·사진)가 운송 주체를 둘러 싼 문화재청과 규장각의 신경전 때문에 29일 국보 지정에서 누락됐다. 규장각이 안전 운송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제출 요구를 거부하자 문화재위원회는 현품이 심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정을 보류했다.
신경전의 핵심은 문화재를 안전하게 운반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이다. 이명희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장은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할 때까지는 소장자가 운송을 책임져야 한다"며 "대형 불상이나 건물 등 옮길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국가 기관이든 개인이든 문화재를 직접 운반해온 것이 관례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옥자 규장각 관장은 "지금까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문화재를 옮겼지만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맞섰다. 문화재위원이기도 한 정관장은 "더욱이 심의 이틀 전에 제출 요청이 와서 준비할 여유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대로라면 삼국유사 규장각 소장본은 당분간 국보 지정이 어렵게 됐다. 문화재청은 다음 심의 때 운송을 재차 요청할 계획이지만 규장각은 가치가 확인된 이상 굳이 국보 지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문화재위원으로 이번 심의에 참여한 이동환 고려대 교수는 "국보 심의 과정에서 문화재 이송 주체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위원들이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게 원칙"이라며 "그러나 심의 때마다 모든 분과위원의 일정을 맞춰야 하고 경비 확보도 안된 상태여서 방문 심의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훼손, 도난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이 기회에 문화재 심의 과정의 이송 주체와 절차 등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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