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이지만 친척집이나 고향에 가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보거나 모임에 나가지도 않고 집 안에만 있는 소위 '인사이더'들은 사회적으로는 아웃사이더인 경우가 많다. 온 가족이 모여서 영화를 보는 일은 당연히 싫어하는 그들만이 즐길 수 있는 독특한 비디오를 추천해 본다. /조원희·영화평론가
"내가 세상을 왕따시킨거야"
세상의 모든 왕따를 위한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감독 테리 즈와이고프, 2001년)는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여학생, 그것도 매우 냉소적인 여학생과 매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중년 남성이 우연하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다. 모두들 엉뚱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원조교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의해 따돌림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혼자서 세상 모두를 따돌리는 능력의 소유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관계란 무상한것…"
혼자 집에 있기가 외로워 사람들 많은 곳으로 나가고 싶지만 그럴 사람들이 없는 이들에겐 '원더 보이즈'(감독 커티스 핸슨, 2000년)가 어울린다. 자기만 보면 으르렁거리는 개, 자신을 골탕먹이는 제자들 사이에서 최악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복잡한 인간관계의 무상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큼·깜찍·발랄한 동성애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의 로맨틱 코미디에 질린 관객을 위해서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감독 찰스 허만 웜펠드, 2001년)가 있다. 지금까지 로맨틱 코미디는 이성애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뉴욕의 화이트컬러 여성들간에 벌어지는 미묘한 동성애를 배경으로 한다. 호기심이 가면서도 사실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동성애라는 코드를 이렇게도 상쾌하고 가볍게 풀어 낸 영화는 드물다.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된 자만이 살아있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영화 속의 명대사는 외워뒀다가 써먹을 만한 멋진 한마디이기도 하다.
록을 통해 인생에 눈뜨다
'올모스트 페이머스' (감독 카메론 크로우, 2000년)는 1970년대 록큰롤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조기 취학과 몇 번의 월반으로 동급생들보다 세 살이나 어린 소년 윌리엄은 취미 이상으로 록큰롤에 빠진 록 컬럼니스트. 미국 최고의 록큰롤 잡지 롤링 스톤으로부터 기고 요청까지 받는다. 윌리엄은 보수적 가정에서 자란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록큰롤 밴드와 미국 횡단 여행을 하면서 사랑과 인생, 우정에 눈을 뜨게 된다. 레드 제플린, 예스, 엘튼 존 등의 팬이라면 귀와 눈이 동시에 즐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노인들의 우주탐험 '철학SF'
미국에서는 큰 히트를 기록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성공하지 못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스페이스 카우보이'(2000년)는 우주비행에 청춘을 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냉전시대 구 소련이 쏘아 올린 통신위성이 고장을 일으킨다. 당시 우주선을 설계한 기술자들이 몸소 우주공간으로 올라가야만 고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들은 이제 70대를 바라보는 노인들이다. 늙어간다는 것을 미지의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것과 비교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철학적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제목과 주인공만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처럼 생긴 전투기를 타고 광선총을 쏴대는 영화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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