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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단역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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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단역의 설움

입력
2003.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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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역 배우의 설움을 알겠구만." 감독과는 특별히 인연이 없는데도 감독의 적극적 권유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회사 선배 A씨. 극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그는 촬영 계획을 통고 받고 대체 휴일을 써야 하나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연락이 오기를 하루하루 기다렸지만 두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주연 배우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장소 섭외에 문제가 생겨서" "눈이 많이 와서 촬영이 순연되는 바람에" 등등. 영화 촬영이 수많은 이유로 미뤄질 수 있음을 A씨는 처음 알게 됐다. 그나마 그는 버젓한 직장이 있다. 촬영이 늦어지는 것은 그저 '조금 짜증나는' 일일 뿐이다.단역 배우의 설움은 많이 알려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고민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용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스타가 되면 지난 얘기를 들춰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의 설움은 그냥 버티면 된다. 문제는 영화에 출연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도대체 영화에 나오지 않는 경우다.

감독도 그렇지만 배우는 뜨지 않으면 '백수'와 다를 바 없다.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고 트레이닝복을 평상복과 잠옷, 외출복으로 두루 사용하며 잘 나가는 친구들 술자리에 꼬박꼬박 나타난다.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는 말을 하루에 두 번 이상 한다면 백수 아니면 배우 지망생?

알아 주는 세상을 만나 영화에 출연했는데 잘리고 마는 것은 더하다. '품행제로'의 최초 편집본은 2시간30분 짜리. 그러나 극장 상영에서는 1시간30분으로 줄었다. "조연들 연기가 너무 많이 잘려서 미안하다"는 주연 류승범의 얘기는 사실이다. 곧 개봉할 '클래식'에는 주인공을 좋아하는 또 다른 남자 배역이 있었다. "함께 한 달 가량 촬영했다"는 주연 배우의 설명으로 보아 비중이 적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것을 통째로 들어 내는, 이 잔인한 방식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육책. 상영시간을 줄이려고 여기저기 찔끔찔끔 건드리면 영화는 망가지기 십상이다.

영화는 꿈이 있어 더욱 잔인한 도살장이다. 하지만 이 도살장을 찾는 행렬은 날로 길어져 간다. 하긴 진짜 불행은 49%의 꿈과 조합됐을 때 효과가 극대화할지도 모르지만. 온 세상의 단역들이여, 설날 좋은 꿈 꾸시길. 컷!(이 컷은 그 '컷'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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