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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프로/연쇄 성폭행 발생한 대전 원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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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프로/연쇄 성폭행 발생한 대전 원룸촌

입력
2003.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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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리. 연쇄 강간범을 가리키는 경찰의 은어다.A,B라는 이름의 발바리가 있다. 둘은 1999년부터 대전 서구 갈마동 월평동 탄방동 원룸 밀집지대를 중심으로, 20∼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신고된 것만 각각 100, 50여 차례의 연쇄 강간 범행을 저질렀다. A는 2001년 검거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고 B는 첫 피해 신고가 들어온 지 5년째에 접어들지만 검거되지 못했다.

A라는 이름의 발바리 2001년 1월 30일. 서구 갈마동 원룸 지역에서 사흘째 잠복 중이던 대전 둔산서 형사들의 눈에 한 자동차의 번호판이 들어왔다. 운전자의 희멀건 얼굴이 수상해 조회를 하자 전과가 나타났다. 미행, 검문에 이어진 DNA지문 확인. 피해 신고만 100여 차례에 달한 연쇄 강간범 A를 범행 현장에서 우연찮게 체포한 순간이었다.

당시 스물일곱살 A는 인근 유성구에서 비디오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고교 시절 강도 전과, 퇴학 이력을 가졌지만 그는 개과천선한 신앙인이었다. 꼭꼭 십일조를 했고 같은 신앙을 가진 동갑나기 약혼녀도 있었다. 각각 재혼 경력을 가졌던 부모는 그에게 복잡한 형제관계만 남겨주고 일찍 죽었지만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신학대학에 진학, 착실한 20대 소시민으로 거듭났다.

고민은 결혼 자금 마련이었다. A는 "딱 한번만 고교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보자"고 생각했다. 서구 갈마동 원룸들을 찾아 나선 것이 1999년 11월 아침이었다. 그는 "수도 검침원"이라며 한 원룸의 문을 두드렸고 혼자 있던 20대 여자는 순순히 문을 열어줬다. 그는 그 곳에서 15만원을 들고나오면서 피해자를 강간했다. 그는 약혼녀에게는 "성 관계를 하자는 얘기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출근을 앞둔 여자 회사원 4명이 한 집에 있었다. 칼을 뽑아 드는 것만으로 모든 제압이 끝났다. 그는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칼 하나에 "여자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4∼5평 공간의 왕이 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사흘이 멀다하고 모자를 눌러 쓴 채 원룸지대를 헤맸고 하루 네 곳의 원룸을 찾기도 했다. 더 이상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용히 돌아와 비디오 가게를 지켰고 약혼자에게는 다정다감했다. 하지만 "거울을 보면서 내가 왜 이러지란 생각을 가끔 했다"고 한다. 전모가 드러났지만 그의 약혼녀는 경찰서로 달려와 "믿지 못하겠다"며 울부짖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B라는 이름의 발바리 1999년 1월 대전 서구 월평동 원룸 밀집지대. 채 먼동이 트지 않은 새벽6시30분의 시커먼 밤공기 속으로 한 30대 중반의 운동복 차림 남자가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주위를 매섭게 더듬던 그는 어둠 속 한 원룸으로 빨려 들어갔다. B라는 이름의 연쇄 강간범이 처음 신고된 날이었다.

A는 주로 낮 시간대지만 B는 철저히 새벽 시간에 움직인다. 165㎝정도 키에 왜소한 몸매, 그는 운동하러 나온 평범한 시민인냥 모자를 쓴 채 원룸 지역을 누빈다고 한다. 그는 A에 비해 주도 면밀하고, 피해자를 미리 확인한 뒤 범행하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관리인, 검침원을 사칭하기도 하고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침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딱 한번 잠복형사의 눈에 띈 그는 날랜 다람쥐처럼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A가 그렇듯 B역시 솟구치는 성욕을 못 이겨서가 아니라 '지배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 새벽길을 나선다는 정황이 피해자들의 진술에서 엿보였다. "온갖 변태적인 행위를 요구하고 사정은 하지 않았다."(피해자 L씨) "시녀처럼 자신을 시중들게 했다." (피해자 K씨)

익명의 지대, 대전 서구 원룸촌 주민들은 이 곳을 '대한민국 최대 원룸 밀집촌' 혹은 '뜨내기 동네'라고 표현했다. 관광특구 대전 유성구와 정부청사, 시청 등 관공서가 들어찬 둔산동을 이웃한 이 지역엔 93년께부터 성냥갑 포개지듯 다세대 원룸 주택들이 들어섰다. 수백 채의 다세대 주택에 수천여명이 원룸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 똬리를 틀고 살지만 서로에겐 관심이 없는 익명의 지대다. 주차공간도 제대로 없어 골목 마다엔 승용차가 줄지어 빽빽하고 옆집에 누가 드나드는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강력 사건만 터졌다 하면 "용의자가 혹 숨어 들지 않았느냐"며 골목마다 잠복중인 형사들을 어렵지않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잇단 연쇄강간사건으로 분위기가 흉흉할 법도 한데 이 곳 사람들은 뜻밖에도 무심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신고 안 된 강·절도 사건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고 했다.

소시민 속으로 숨어버린 범인 대전 둔산경찰서 안태정 형사계장의 책상엔 '암호'를 잔뜩 담은 서류철이 놓여 있다. 여기저기 경찰서에서 입수한 피의자들의 유전자 정보다. 유전자 정보는 5년째 연쇄 강간 행각중인 B가 현장에 유일하게 흘리는 단서다. 새로 입수한 피의자들의 유전자 정보를 B의 것과 맞춰보는 것은 이 곳 경찰의 일상사가 됐다.

'연쇄 강간범은 반드시 현장 인근에 산다'는 범죄학 ABC에 따라 서구 일대 원룸지대를 뒤져보기도 했지만 원룸 촌은 '감히' 손대기엔 벅찰 정도로 넓었고 익명성은 깊었다. 찬바람 속 수시로 아침 잠복도 해보지만 B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경찰은 "B역시 A처럼 철저히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일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들의 진술로 얻어낸 몽타쥬와 사건현장 인근에서 찍힌 B로 추정되는 CCTV 화면도 있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강간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가해자의 얼굴 모습은 동일한 범인에 대해서 천차만별이다. 순간적으로 위압당하면서 가해자의 눈을 맞추지 못해 그렇다"고 경찰은 말한다.

검거직후 A를 심층 면담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강덕지 범죄심리과장은 "A같은 연쇄강간범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를 앞세웠다. "성을 오락시하면서도 억압하는 모순된 사회문화 분위기에다가 성폭력 피해자를 조롱하는 풍토 때문에 성범죄에 대한 가해자들의 죄의식이 희박하다"는 분석이었다.

/대전=글 이동훈기자 dhlee@hk.co.kr

■ "유전자 정보은행" 도입 논란

사람의 유전체 속에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지 않지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염기서열이 존재한다. 'STR좌위'라 부르는 이 부분의 반복 횟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9가지 종류를 비교하면 똑같은 반복 횟수가 나타날 가능성은 1억분의 1∼10억분의 1이라고 한다. 사실상 사람마다 고유한 숫자를 갖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방법은 90년대 들어 대중화됐고 과학수사에서 활용하는 유전자 감식도 한번 감정에 시약값만 5만원 가량 들어간다는 이 방법을 쓴다.

검·경은 초범자들도 지문은 남기지 않는다는 요즘, 성폭력 등 주요범죄 수사를 위해 유전자 정보 관리와 유전자 정보 은행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강력사건 피의자들의 유전자 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으면 범인이 현장에 흘리고 간 정액, 피부조직, 머리카락, 담배꽁초 등을 통해 추출한 유전자 정보로 효과적으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이 인권침해와 국가의 통제 강화 등을 우려하며 반대, 논란을 빚고 있다. 94년 검·경은 유전자정보은행 설치 운영법안 입법을 추진했으나 이 같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고 지난해에도 "유전자 은행 추진"의 애드벌룬을 띄웠다가 인권단체들의 반발에 직면했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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