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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하드웨어 경제

입력
2003.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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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운행하던 차량들이 당장 그 자리에서 멈추고, 길가던 행인들은 모두 지하도로 황급히 대피한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화급한 약속이 있어도 해제사이렌이 울릴 때까지는 꼼짝 못한다. 민방공 훈련의 한 장면이다. 75년 베트남의 적화(赤化)통일 직후 전시 체제적인 국가 분위기에서 시작된 이 훈련은 횟수와 방식 등은 많이 바뀌었지만 요즘도 여전히 실시된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경제활동을 일시 정지시키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 훈련이 지속되는 이유는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공익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민방공 훈련이 시행된 이후 숱한 재난사태가 있었지만, 이번 '1·25 인터넷 대란'만큼 파괴력이 컸던 사고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정보화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터넷의 마비는 현실적으로 가장 위험하고, 가장 발생 확률이 높은 재난으로 등장했다. 인터넷의 안전이 국가의 안전이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25일 온 나라의 인터넷이 마비됐는데도 비상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어떻게 행동하라는 안내방송은 더욱 없었다. 사고를 알리고, 해결방법을 제시한 것은 네티즌 자신들이고, 민간 보안업체였다. 거의 하루가 지나서 정보통신부가 뒤늦게 발표한 '국민행동요령'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이다. 인터넷 재난에 대비한 국가차원의 대응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은 사고가 나고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국가위험도(Country Risk)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번 같은 인터넷 마비사태가 계속 재발된다면 인터넷은 한국의 자랑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위험 요소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 인터넷 사고 가능성 때문에 한국이 사업하기 위험한 나라로 낙인 찍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사고는 디지털 시대에 진입한 우리 사회가 아직도 아날로그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인터넷을 수용할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시설을 확장하는 데만 급급한 외형주의, 실적주의가 여전히 우리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수대교의 붕괴, 삼풍아파트의 참사를 부른 안전불감증은 사이버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두 차례나 바이러스 공격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있었고, 패치 프로그램이 공개됐는데도 서버를 다룰 정도의 전문가들 조차도 80%가 사전 보안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규모 면에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제도와 의식, 관행은 후진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중성은 한국경제 선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증권 거래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으로 거래될 만큼 시스템은 앞서 있지만 시장질서는 주가조작과 분식회계 등 불공정거래가 판을 치는 한국증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드웨어는 그럴 듯하게 갖추었지만 이를 운용할 소프트웨어는 형편없는 속 빈 강정이 어제나 오늘이나 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 우리 경제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소프트웨어의 개혁이며 정상화이다.

배 정 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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