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란이 한 바탕 휩쓸고 간 27일 오후,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날아들었다. 50대 퇴역 군인이었다.그는 "신문에 나온 '국민행동요령'을 봤다"며 "경찰과 군이 나서야 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니 안심하시라'는 말에 그는 벌컥 화를 냈다. "아니, 정부가 비상대책까지 발표했는데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정보통신부가 26일 오후 인터넷 대란의 원인이 된 웜 바이러스를 막자며 발표한 '국민행동요령'이 빚은 촌극의 하나였다. 실제로 이 발표가 있은 직후 보안업체에는 개인들의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관련사이트는 하루종일 접속이 되지 않는 혼란이 벌어졌다.
윈도 MS-SQL 2000 서버를 쓰는 5만명, 불법 복제품 사용자까지 해도 10만명도 안되는 '서버 관리자'만 알면 됐을 내용을 마치 온 국민이 따라야 하는 비상지침처럼 과장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일반 PC를 쓰는 대다수의 개인들은 보완 프로그램(패치 파일)을 내려받거나, 별도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전혀 없었고, 서버 사용자들만 나서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통부 장관이 26일 직접 읽어 내려간 '국민행동요령'에는 대상자가 '서버 관리자'라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가뜩이나 인터넷 대란으로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들을 안심케 하기 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MS와 함께 고객 리스트를 놓고 전화를 하던지, 찾아가서 문제의 서버 사용자들에게 패치 파일을 깔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좋은 생각이다. 검토해 보겠다"고 말해 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정통부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 지를 보여준 인터넷 대란이었다.
정철환 경제부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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