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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인생 송삼석 (53)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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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인생 송삼석 (53)아, 어머니

입력
2003.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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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름은 김 복(金 福), 외자다. 어머니가 태어나시기 전까지 외가는 형편이 꽤 어려웠는데, 어머니가 태어난 이후 살림이 피기 시작해 복덩이가 굴러들어왔다고 해서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세상의 어느 어머니나 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본 적이 없다.모나미 153 볼펜이 명성을 얻고 있을 때인 1960년대 중반, 둘째 형님은 해군 군의관 생활을 끝내고 부산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세브란스 의전을 나와 삼례에서 병원을 차렸던 둘째 형님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병원을 정리한 뒤 부산에서 해군 군의관 생활을 했다. 평소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터여서 둘째 형님의 병원은 곧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자식 나이가 60이든 80이든 어머니 눈에 자식은 항상 어린아이일 수 밖에 없었던지, 어머니는 한달이 멀다 하고 서울 아현동 내 집과 부산 둘째 형님 집을 오가셨다. 워낙 타고나신 품성이 그러신지라 형제들은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몸이 아프시지 않도록 돌봐드리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어머니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부산에 내려가실 때 틀림없이 손에 끼고 계시던 금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금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어머니는 얼버무리시고 말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는 다시 금반지를 맞춰서 어머니 손에 끼워 드렸다.

그리고 나서 두어달이 지났다. 부산 둘째 형님댁에 갔다 오신 어머니 손에서 금반지가 또 사라졌다. 나는 너무 궁금해서 끈질기게 금반지의 행방을 여쭤봤다. 그제서야 어머니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부산에는 왜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어. 그래 내가 가진건 별로 없고 해서 그냥 반지를 빼주고 왔다. 반지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잘 쓰이지 않겠느냐. 네가 사준건데,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게. 그 사람들도 다 하나님의 자식 아닌가."

그런 식으로 없어진 반지가 도대체 몇 개가 되는지, 나는 지금도 그 숫자를 잘 헤아리지 못한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아현동 집 근처 가게 중에 어머니의 외상 장부가 없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 용돈도 넉넉히 드리는 편이었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줘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가게에 있는 물건을 집어 주곤 했다. 그래서 며칠에 한번씩 아현동 일대 가게를 돌며 어머니의 외상 값을 갚는게 내 주요 일과 중의 하나가 된 적도 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하대를 하지 않았다. 하대는 커녕 오히려 공경을 했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내 차를 운전하는 기사에게는 "제발 내 아들 무사히 모시고 다니시게나"하며 큰 절을 했고, 가정부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는 "그저 밥이 보약일세. 자네 정성에 우리가 사네"하시며 큰 절을 했다. 회사 직원이든 누구든 간에 어머니는 항상 보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했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에게는 내 밑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것임을 일깨워주곤 하셨다. 그래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회사 직원들은 어머니를 무척이나 어려워 했다.

어머니는 세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분이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 그 험한 길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다니며 옥바라지를 하신 헌신적인 아내였고, 주위의 누구라도 아프고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셨던 분이었다. 1974년 여든여덟의 나이로 눈을 감으실 때까지 어머니는 언제나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셨고, 그분의 충만한 사랑은 내 삶의 자양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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