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총장의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다. 대학이 거대화, 특성화하고 주변환경이 급변하면서 대학총장에게 요구되는 덕목까지 변화하고있기 때문. 이에 따라 대학들은 '학식과 덕망'이라는 기존의 총장 선출 기준을 과감히 타파하고 대학의 변화와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는 상황이다.■CEO형
최고경영자(CEO)형 총장들은 대학이 더 이상 '학문의 전당'으로 머물 수는 없다는 관점에서 대학을 바라본다. 대학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재정난은 경영능력을 갖춘 총장들을 갈구하고 있다.
우선 총장의 기금 모금능력은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외형적인 잣대가 되고있다. 중앙대 박명수(朴命洙)총장은 빙상선수 출신이다. 4·19 당시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이력을 증명하듯 공격적인 경영을 펼친다.
학자형인 전임 이종훈(李鍾燻)총장이 IMF 구제금융 시기를 보수적인 경영으로 넘겼기 때문에 대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간 학교발전기금 50억원 모금을 공약으로 내세워 선출됐던 박총장은 동문들의 쇼핑몰 개설, 탤런트 장나라의 귀걸이를 기증받아 모금에 나서는 등 2년 만에 이미 150억원의 기금을 모았다.
이경숙(李慶淑) 숙명여대 총장도 대표적인 CEO형 총장이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숙명여대에 취임한 이총장은 9년만에 학교 재정을 건실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창학 100주년이 되는 2006년까지 1,000억원 기금모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총장은 동문과 기업으로부터 모금은 물론 국내 최초로 교내 전광판을 설치하고 세계최고의 요리학교 프랑스의 꼬르동 블루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는 등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평교수 시절부터 산학연대를 강조했던 연세대 김우식(金雨植)총장 역시 CEO형이다.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여입학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자산 1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아태평화재단'을 인수하는 등 파격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다.
"대학의 본래 기능은 인재를 육성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지만 이제 대학도 기업체처럼 투입, 산출을 따지는 엄연한 경영체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김종량(金鍾亮) 한양대 총장의 지적이야말로 CEO형 총장들의 존재이유를 잘 대변하고있다.
■친구형
아들이나 딸 같은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리는 '친구형' 총장도 있다. 성공회대 김성수(金成洙)총장이 대표적인 인물. 2000년 7월 취임한 후 연간 판공비 2,000만원을 학교운영비로 사용하라며 반납, 화제를 모았었다. 퇴임 때까지 지급될 판공비는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았고 학생들과 영화 단체관람,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결제통장 잔고가 부족, 한때 신용불량자로 몰리기도 했던 김총장은 지금도 매달 자취생들과의 저녁식사, 학생들과의 생일파티 등에 참석하고 있다. 대표적인 CEO형으로 꼽히는 숙명여대 이경숙총장 역시 축제 때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드럼을 치며 '난타'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색깔있는 가발을 쓰고 나와 춤을 추며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등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이밖에 이메일 교신 등으로 학생들과 교감하는 총장들도 대다수다.
■학자형
한국은행총재, 재경부총리 제의 등 DJ 정부는 물론, 노무현(盧武鉉)당선자측으로부터 끊임없는 입각 제의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운찬(鄭雲燦)서울대 총장은 '학자형'에 가깝다는 평가다. 조순(趙淳)전 서울시장의 수제자로 조 전 시장과 함께 '경제학 원론'을 펴내기도 했던 정총장은 대학의 행정가나 경영자로서보다는 개혁적인 '학자형'이라는 평가가 더 어울린다.
건국대 정길생(鄭吉生)총장 역시 전공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경우다.
정총장은 번식학 관련 연구를 국내 처음으로 개척했고 전공분야 논문만 해도 수백 편에 이를 정도다. 95년부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종신회원을 맡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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