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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심청, 연꽃의 길" 연재 100회 황석영씨 기고 / "성애묘사 수위조절 가장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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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심청, 연꽃의 길" 연재 100회 황석영씨 기고 / "성애묘사 수위조절 가장 어려워"

입력
200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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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로서는 쓰다보니까 못마땅한 진행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좀 아쉽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청이와 렌화의 분열된 내면의 기록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쯤은 마무리 단계에 와 있어야만 했다. 따라서 처음에 생각했던 구성은 말년에 노파가 되어버린 청이가 구술하는 형식으로 가려고 했다.누군가 회상하고 말하노라면 내면의 기억과 앞뒤 없는 사건들이 서로 들락날락 하면서 간추려지고 비약도 마음대로 이루어질 수가 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지난번 '손님'의 예를 들면서 대중적으로는 맞지 않고 더구나 신문에 연재하기에는 무리가 아니냐는 걱정들이 많았다. 그래서 정공법으로 줄거리를 끌고 나갔는데 그러다 보니 사실적인 자료와 에피소드를 놓칠 수가 없게 되고, 쓰기도 어렵고, 어쩐지 밋밋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독자들은 이런 식이 쉽게 읽힌다고는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매춘의 길'에 걸맞는 성희 묘사인데 어정쩡하면 비겁해 보이고, 세밀하게 들어가면 욕 먹기 십상이다. 모두 알다시피 나는 처음부터 해부학적 묘사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이 작품에 들어갔었다. 매번 내가 나를 배신한다. 즉 어느결에 체면 때문에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정확하고 냉정하게 묘사를 해야 한다면서도 내 나이 먹은 만큼의 문화가 나를 제약한다.

돌아보면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의 인터넷마다 국제적 포르노 바다가 넘쳐 나고 있다. 포르노의 세계는 '변강쇠'나 '고금소총'의 사람 냄새 나는 그것이 아니며 삭막한 물질의 세계이다. 즉 포르노는 남근의 일방 게임이며 자본주의적 실재 세계를 가장한 플라스틱의 꽃밭이다.

동아시아의 근대가 차와 아편의 교환에서 시작되는 것은 그럴 듯하게 보인다. 이는 생존과 직접 관련이 없어 자본 축적 없이는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기호품이기 때문이다. 매춘이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오랜 습속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는 근대에 와서 시장이 국제화하면서 더욱 노골화하고 번성한다. 노예제 폐지 이후 아프리카에서 중국 동남아로 이동한 인력 시장은 노출된 남자들의 실상과 뒤에 숨은 여자들의 일화가 중첩되어 있다.

억눌려 있던 소리들이 새롭게 부활하는 세기에 성적 담론을 비롯한 인간의 욕망은 주체의 문제와 더불어 새롭게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동양의 카마수트라나 소녀경을 비롯한 각종 성 담론에서부터 니체 프로이트 푸코 라캉 보드리야르에 이르기까지 생산과 소비에서 성의 제도화가 얼마나 주요한 토대가 되었는가를 보고 놀란다. 다시 말해 두지만 이 소설은 '여성주의' 또는 '남성주의'와 같은 주의적 시선과는 상관이 없으며 근대 속에서 동아시아의 시장이 변해가는 모습과 육신과 생활이 상품으로 변해가는 한 여자의 삶을 그려 보려고 한다.

● "심청…" 지난 줄거리

심청은 뺑덕 어미의 간계로 중국 상인들에게 팔려 난징으로 끌려 간다. 인당수에 수장되는 것이 아니라 용왕굿의 넋 건짐 의례만 치르고 바다를 건너며 상인들은 저희 식대로 '렌화'라고 이름을 짓는다.

렌화는 먼저 차의 재배와 무역으로 거부가 된 첸 대인의 시첩으로 팔려간다. 첸 대인이 죽자 진장에서 기루와 도박장을 운영하는 첸 대인의 막내 아들 창을 따라 기루에 나간다. 기루에서 렌화는 남자 다루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게 된다. 렌화는 기루에서 떠돌이 악사 동유를 만나 첫사랑에 빠지고 몰래 작수성례로 부부가 된다.

아편전쟁으로 진장이 영국 군함의 포격을 받자 렌화는 동유와 함께 교외로 피난을 갔다가 달아나기로 결정한다. 쑤저우에 가서 광대패와 합류한 동유와 렌화는 광대 중의 하나인 샹자오와 항저우에서 만나기로 한다. 샹자오는 렌화의 패물을 탐내 동유를 속이고 렌화를 유괴배에 팔아 넘긴다. 렌화를 잃어버린 동유는 헤매 다니다가 샹자오를 찾아내 죽이고 옥에 갇혔다가 태평천국을 일으킨 두령 중의 한 사람을 만나고, 렌화는 외방으로 팔려간다.

● 연재 뒷얘기

황석영(60)씨는 "한국일보에 '심청, 연꽃의 길' 연재를 시작한 뒤 매일 6㎞씩 뛴다"고 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신문 연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연재소설은 다른 무엇보다도 체력이 바탕이 돼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100회를 맞은 '심청, 연꽃의 길'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뜨겁다. 회사원 김종현(32)씨는 "매일 아침 '심청, 연꽃의 길'부터 찾아 읽는다. 장면 묘사가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민우(22)씨는 "인터넷 연재는 몇 회 늦다. 읽다 보면 다음 얘기가 궁금해서 신문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 복지단체에서는 "연재소설을 점자로 제작해 시각 장애인들에게 읽히는데 반응이 좋다"면서 "82회가 실린 신문이 빠졌는데 어떻게 구할 수 없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팀장은 "연재소설을 번역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동양적 소재와 주제 의식이 외국에서도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문단의 평"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화제는 대담한 성애 묘사다. 매일 아침 신문사로 일반 독자와 사회 단체 등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독자들은 여성 비하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지 등을 묻는다. 황석영씨는 "심씨 문중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면서 "외설적 내용처럼 보이지만 억압 받고 상처 받은 동양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황씨는 앞으로의 내용 전개에 대해 "가혹하게 수탈당하는 동양의 근대화 과정이 청이의 몸을 통해 드러날 것"이라면서 "청이는 대만과 오키나와, 일본 등을 떠돌며 부서지고 무너져, 노파가 되어 쓸쓸히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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