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월이 되면 어두웠던 시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어른들이 생각난다.오늘은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님의 16주기이고 18일은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9주기였다. 내달 4일은 운산(雲山) 김관석 목사님의 1주기이다. 이 분들은 고희를 바라보는 내가 올곧게 살도록 큰 감화와 영향을 끼친, 한 순간도 잊지 못할 어른들이다.
여기에 잊지 못할 세 분이 더 계신다. 고 서남동 목사님과 고 심원 안병무 박사님 그리고 고 이우정 선생님이시다.
이 어른들은 한국 기독교사에는 물론 우리 민족사에도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이 분들의 고귀한 삶이 어찌 나 하나에게만 귀감이 되었으랴. 김재준 목사님은 내가 다닌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 설립자로 한국 교회와 민족의 큰 스승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말 3선 개헌 반대투쟁위원장을 비롯해 서슬 퍼렇던 시절 독재정권에 저항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문익환 목사님은 어떤가. 민주화와 민족통일운동의 선구자가 아니셨던가. 모두들 양심을 지킨 신학자들로 나라와 민족과 민중을 위해 감옥살이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김재준 서남동 문익환 이우정 선생님은 대학에서, 김관석 목사님과 안병무 박사님은 내가 목회사역을 하는 동안 나를 직접 가르치고 도움을 베풀며 정직한 삶을 인도하셨다.
내가 이런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문하에서 배울 수 있었고, 가까이서 모시고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소중한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나는 이 어른들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을 깨쳤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배웠다. 그래서 당신들의 몸소 사시는 그 삶에 대단히 미력하지만 나도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다. 나는 내 평생에 이 스승들을 잊을 수 없다.
나도 두 번 감옥살이를 하긴 했다. 한 번은 76년 3·1민주구국선언사건(속칭 3·1명동사건) 관련이었고 다음은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이었다.
나의 스승이신 문익환 서남동 안병무 이우정 선생님 등도 함께 고생하셨다. 시련을 겪고도 초연한 그 분들의 의연한 모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면 그 때의 감옥살이다. 하지만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되어 잊혀져 가는 우리 민족과 교회의 큰 스승인 바로 그 분들이다.
이 해 동 덕성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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