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 정부 시절 '페리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의 골간을 짰던 윌리엄 페리(사진) 전 미 국방장관은 24일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열린 강연에서 북한 핵 사태의 현 단계를 '긴급한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더 이상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되며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나서는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페리 전 장관은 북한이 상당한 핵을 보유할 경우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전쟁 억지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이 자신들의 비핵 지위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됨으로써 핵 확산의 도미노 효과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이 테러단체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페리 전 장관은 특히 1994년 한반도 핵 위기 때 자신이 영변 핵 시설을 정밀유도 재래 탄두로 공격하는 방안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을 상기하며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이나 핵 개발 허용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페리 전 장관은 이날 한 미 일 3국간 공조의 복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은연중에 한국과 일본을 완전한 협력자로 여기는 것을 꺼리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협력 없이는 대북 정책의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정부는 2년 전 대북 포용의 기조를 버려서는 안됐었다"며 "부시 정부 출범 후 김대중 대통령이 한 미 일의 개입정책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을 서둘렀지만 이 만남은 김 대통령에게는 '재앙'이었다"고 말했다.
페리 전 장관은 강연 후 별도의 질의응답을 통해 한국 정부의 특사 파견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국이 북한 핵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지금은 누군가가 북한의 지도부를 향해 직접 핵 포기를 직접 설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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