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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52)아버지의 자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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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52)아버지의 자식교육

입력
200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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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척 과묵하신 분이었다. 큰 소리로 당신의 뜻을 6남매에게 강요하시지도 않았고, 자식들이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이러쿵 저러쿵 말씀하시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6남매는 엄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독특한 교육 방법이었다. 아버지는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아버지는 넉넉치 않은 살림인데도 6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냈다. 그것은 천석지기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보수적인 관념이 지배하던 당시에 딸 셋 모두 대학에 보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도 역시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른이어서인지 큰형님(송정석·宋正錫·85)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집안을 이을 장자이기도 했지만 누님을 둘이나 본 뒤에 얻은 아들이어서 그러셨던 것 같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과 때 맞춰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됐던 동포들이 부산항을 통해 속속 귀국하기 시작했다. 동포들은 강제 징용의 고통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상태였다. 때마침 전북 YMCA가 귀국 동포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동시에 전도를 하는 행사를 마련하게 됐는데 의사이자 YMCA 간부였던 큰형님이 선발됐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평소 교회 일이라면 적극적이었던 아버지의 반대는 의외로 완강했다. 이유는 단 하나,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해방 직후라 치안도 불안하고, 부산행 기차는 지붕에 타야 할 정도로 항상 초만원이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큰 형님의 고민은 점점 깊어 갔다. 그 때 둘째 형님(송태석·宋台錫·83)이 "제가 대신 가겠다"고 나섰다. 둘째 형님은 의대생이었다. 아버지는 그때서야 "둘째, 네가 갔다 와라"고 허락하셨다. 나는 둘째 형님이 2개월 뒤 1차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인 1945년 11월 둘째 형님과 교대해서 난생 처음 부산으로 갔다. 전북 YMCA는 부산항에 간이 식빵공장을 차려놓고 있었다. 식빵이래야 요즘처럼 맛있고 영양가 있는 게 아니라 쌀겨로 만든 소위 '젖빵'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2개월 동안 귀국하는 동포들에게 식빵과 선교 전단을 나눠주는 활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나도 큰형님을 대신해 봉사활동을 간 셈이 됐던 것이다.

아버지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으셨는데 대학 진학만큼은 일체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아들들의 진로를 의사로 정해놓고 있었다. 아버지가 의대를 강조하신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 때문이었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아버지는 일본인들이 적어도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의사에게는 그가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상관없이 깍듯하게 '선생님' 호칭을 붙여주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아버지는 의대를 가되 반드시 세브란스 의전(연세대 의과대학)을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유는 단 하나, 세브란스 의전이 미션 스쿨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형님은 세브란스 의전으로 진학했다. 연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큰 형님은 일제 시대 때 받은 일본 의사 면허증이 있어 지금도 일본에서 내과의사로 활동 중이다. 외과를 전공한 둘째 형님은 지금은 은퇴하셨다. 아버지는 누님들에게도 미션 스쿨에 갈 것을 권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모두들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아버지는 자식들 진로 문제도 항일 정신과 신앙 생활을 연결 지어 생각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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